사제 4명과 수녀 2명이 모든 것이 부서진 베이촨현의 한 봉쇄지역으로 향하는 검문소를 통과해 고립된 채 살고 있는 이재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했다.
이들은 베이촨현 부근까지 다가갔는데, 이곳은 전염병 창궐을 막기 위해 봉쇄 조치 됐다.
몐양의 루르드성모성당 주임 중청 신부를 비롯한 6명으로 된 구호팀은 자동차 3대와 트럭 1대를 타고 가서 5월 21-22일 이재민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줬다. 쓰촨성 지진은 5월 12일에 있었다.
중 신부 외에 다른 팀원들은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모인 사제 3명과 루르드성모성당에서 일하는 장이메이 수녀와 잔덩주 수녀다. 이들은 쌀 5톤, 식용유 200통을 트럭에 싣고 몐양에서 서북쪽으로 향했다.
중 신부는 5월 22일 UCAN통신에 베이촨현과 안현 등 여러 현의 10여 곳에서 몇몇 가톨릭신자를 포함한 주민들을 일일이 방문해 식량을 나눠주고 위로의 말도 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5월 21일에는 융안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봉쇄된 베이촨현 코앞에 있는 레이구까지 갔다”고 덧붙였다. 진앙지인 원촨에서 동북쪽으로 90km에 있는 베이촨현이 가장 먼저 봉쇄 조치됐다.
중 신부는 “(레이구 바로 앞에 있는) 검문소에서 경찰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우리 앞을 막아섰다. 그래서 적십자사의 허가증을 보여주고 ‘가톨릭교회의 사랑의 선물’이라고 쓴 현수막도 높이 치켜들고는 꼭 들어가게 해달라고 사정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경찰이 통과를 허락하기는 했지만 “극히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그에 따르면, 레이구에서는 몇몇 구호팀들이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집과 건물이 폭삭 주저앉거나 위태롭게 서있었다. 중 신부는 자기 팀원 모두 마스크를 썼다고 덧붙였다.
레이구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중 신부 팀은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다른 피해 지역에 식량을 나눠주고는 5월 22일 저녁에 몐양으로 돌아왔다. 베이촨현에서 빠져나온 이주민들은 현재 이웃 도시들의 스포츠센터에 머물고 있다.
중 신부는 검문소를 설치한 것은 위험을 알릴 수 있는 훌륭한 조치라고 했다. “일반인이 이 지역에 들어가 그 끔찍한 참상을 보고 나면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다. 지진이 일어난 지 10일이 지났기 때문에 주검이 발견된다 해도 이미 부패했을 것이다.”
이에 앞서, 지진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인 5월 13일에 중 신부는 잔 수녀와 함께 고향마을 언덕에 사는 그녀의 노모를 찾아 나섰는데, 당시 한 구조대원이 제대로 걷지 못하는 그녀의 어머니를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켰다.
5월 22일자 헤드라인을 “베이촨이여, 영원히”라고 뽑은 <난팡(南方)일보>에 따르면, 베이촨에서 모든 사람이 떠나고 잔해 더미 속에서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자 5월 21일 저녁 구호팀들도 모든 구호활동을 중단했다. 이 신문은 무너진 건물들은 모두 철거하고 새로운 곳에 도시를 새로 지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5월 22일자 중국 언론에 따르면, 베이촨현에서는 주민 3만명 가운데 약 1만2000명이 죽고 3000명이 실종됐다. 베이촨현은 쓰촨성 성도인 청두에서 북쪽으로 135km에 있으며, 청두는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1530km 떨어져있다.
중 신부에 따르면, 베이촨현에는 가톨릭신자 수백 명이 있었는데, 대부분 베이촨현 외곽에 살았다.
중국 국무원은 5월 23일 이번 지진으로 9성과 1직할시가 피해를 입었으며, 5만5740명이 죽고 29만2481명이 다치고 2만4960명이 실종되고 1100만 명이 집을 잃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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