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의회에서 239년 간 이어온 힌두 군주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하자, 그리스도인과 힌두인 등이 네팔 공화국 탄생을 함께 축하했다.
601명으로 된 제헌의회는 5월 27일 카트만두에서 선서를 한 뒤 하루 만에 압도적인 찬성으로 군주제 폐지를 결정했다.
네팔지목구장 안토니 샤르마 주교(예수회)는 5월 29일 UCAN통신에 “참으로 위대한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제헌의회 첫 번째 회의가 10시간 정도 연기된 가운데도, 5월 28일 네팔 전역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축하행사가 시작됐다.
제헌의회 의원 “560명이 공화정 도입에 찬성하고 겨우 4명만이 반대표를 던진 가운데,” 투표결과는 자정이 가까워서야 발표됐다.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여러 정당의 깃발을 흔들며 공화정 도입을 반겼다.
샤르마 주교는 “우리 가톨릭신자도 이 나라 국민으로서 당연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 기쁨을 우리 네팔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나라를 강복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네팔가톨릭주소록에 따르면, 네팔 그리스도인 100여만 명 가운데 가톨릭인은 7500명이다. 네팔은 인구 2800만 명 가운데 80퍼센트 이상이 힌두인이다.
지난 4월에 선출된 제헌의회는 현재 새 헌법을 초안하고 있다. 지난 2006년까지 이 나라에 공산주의 공화정을 세우기 위해 10여 년 넘게 싸워온 마오주의자들이 가장 큰 정당이 됐다. 제헌의회는 앞으로 5년 동안은 국회로서도 기능하게 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제헌의회는 정부에 2주 안에 갸넨드라 샤 국왕이 나라얀히티왕궁을 떠나게 하고 또한 모든 특전과 급여, 시설을 포함한 왕의 개인비서실도 해체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샤르마 주교는 “네팔은, 여전히 무장투쟁이 지속되고 있는 나라들에, 대화가 평화와 궁극적인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임으로써 다시 한번 역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군주정에는 슬픈 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는 사실이 더 슬플 것이다.” 샤르마 주교는 신학생이던 1960년대에, 인도 다르질링에 있는 예수회의 성 요셉대학에서 갸넨드라 왕과 그의 형, 고 비렌드라 샤 왕을 가르쳤다. 샤르마 주교는 지난 4월 UCAN통신에 갸넨드라 왕(60)은 몇몇 잘못된 판단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통행금지와 심지어 경고사격까지 불러일으켰던 2006년 민주화시위의 영향으로 갸넨드라 왕이 2002년 5월에 해산시켰던 국회를 2006년 4월에 재소집하게 되면서 네팔 군주정에 대한 압력이 시작됐다. 당시 국회에서는 갸넨드라 왕의 권한 대부분을 박탈하고, 군사령관 임명권과 군 지휘권, 그리고 모든 공식문서에서 “왕”이란 표현을 삭제할 권한을 국회 스스로 위임받았다. 갸넨드라 왕은 1996년 이래 1만1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마오주의자와의 싸움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서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가 원상회복되자 마오주의자들은 2006년에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개신교인인 락스미 프라사드 뉴파네는 5월 29일 UCAN통신에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다. 이제 네팔 역사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했으니 평화가 들어서게 하자. 그러려면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군주제 아래서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왕들이 통치하던 때에도 우리는 하느님 사업을 해냈다”고 지적하고, “이제 공화정이 시작됐으니 전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하느님을 위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톨릭인인 어거스틴 봄존은 5월 29일 UCAN통신에 “우리나라가 공화국이 돼 기쁘다. 이제 과거와 달리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인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왕들이 만날 백성을 못살게 굴었던 만큼 군주제가 붕괴된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네팔 그리스도인은 1991년의 새 헌법이 종교자유를 보장하고 절대 군주제를 입헌 군주제로 바꾼 다음에야 비로소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1991년 전에는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불법이었으며, 개종이나 다른 사람을 개종하려는 시도는 범죄로 간주돼 처벌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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