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포콜라레 운동 회원들이 마리아의 도시 (마리아폴리)에 “시민”으로 참여해 생활 속의 복음 실천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려는 포콜라레 정신을 되새겼다.
포콜라리노(남자 회원을 가리키는 이탈리아말)인 쥬세페 마렝고는 “우리는 이웃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전체 인류의 한 부분으로 소중히 여긴다.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 속에 사랑의 씨를 뿌리고 그들이 다른 이를 사랑하도록 기도한다”고 설명했다. 마렝고는 1986년에 한국에 왔다.
그는 7월 22일 UCAN통신에 “우리는 교회의 복음화 일선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마렝고를 비롯한 약 2500명의 포콜라레 회원은 한국 포콜라레가 7월 16-27일에 충남 천안시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한 번에 3박4일 일정으로 세 번으로 나눠 연 마리아폴리에 참여했다. 마리아폴리는 포콜라레가 회원 대상으로 하는 여름 피정이다.
참여자인 송두진 (요한 보스코)은 “마리아폴리에서는 작은 아이부터 주교들에 이르기까지 다 같은 형제자매고, 평등한 시민”이라고 했다. 그는 “여기에서 우리는 포콜라레 운동의 영성을 되새기고 이 운동에서 하는 여러 활동을 소개한다. 하지만 주로 우리의 일상을 나누고 회원 간의 친교를 다진다”고 했다.
이번에 열린 마리아폴리 모임은 매일 미사가 있었고, 포콜라레 활동에 관한 소개, 나이별 그룹 토론, 묵주 만들기, 춤 등에 관한 워크숍, 환경, 언론에 대한 포럼 등이 있었다. 셋째 날에는 각 워크숍에서 준비한 공연으로 채우는 축제가 있었다.
대전교구의 유흥식 주교(라자로)도 “시민”으로 이번 마리아폴리에 참석했다.
그는 7월 22일 UCAN통신에 “나도 여기서는 시민의 한 사람이다.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다른 회원들과 지내면서 여기서는 주교직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상관없다”고 했다.
그는 자기는 1969년에 신학생일 때 처음 포콜라레를 알게 됐는데, “그때 이후로 포콜라레 정신으로 살아왔다. 이 운동이 없었으면 내가 주교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한 참가자는 2003년부터 계속해서 아이들과 같이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UCAN통신에 “여기 모인 사람들은 친절하고 인격이 훌륭하고 신앙이 깊은 분들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 사람들을 닮아서 다른 이를 사랑하는 좋은 가톨릭인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포콜라레는 이탈리아 말로 “벽난로”라는 뜻이다. 지난 3월 14일에 88살로 죽은 끼아라 루빅이 2차대전 중에 이탈리아 트리엔트에서 시작했다. 포콜라레의 영성은 모든 인종과 종교의 일치에 초점을 두며,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신 “하나되게 하소서”라는 기도에서 영감을 받았다. 복자 요한 23세 교황이 1962년에 이 운동을 공인했다.
이번 모임 진행에 참여한 최은규 (베르나데트)는 “포롤라레 운동의 목적은 초대교회 공동체와 같이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는 스스로를 재복음화하고, 복음의 말씀을 실천한다”면서, 포콜라레는 가톨릭 신자들이 복음의 빛에 비춰 세상을 보게 돕는다고 했다.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은 여러 사회 문제에도 해결책이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유 주교는 “포콜라레 운동의 카리스마는 새로운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이미 성서 안에 있는 것으로 우리는 다 알고 있다”고 지적하고, “하느님은 끼아라 루빅을 통해 우리가 사랑에 기초한 일치와 친교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해 주셨다”고 했다.
포콜라레 운동은 한국에서는 1969년에 시작돼서 현재 약 2만5000명의 회원이 있다. 이 가운데 약 70명이 서원을 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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