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의 동티모르 독립 전후에 벌어진 폭력사태 배후가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해 설립된 ‘진실과 우의위원회’가 최근 낸 보고서는 정의를 외면하고 있다고 한 교회 관리가 지적했다.
이 위원회는 동티모르 (티모르 레스테)와 인도네시아 정부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위원회는 인도네시아군이 폭력사태를 지휘했으나, 친독립 세력들이 저지른 인권침해가 있다는 주장도 언급했다.
동티모르의 호세 라모스-호르타 대통령과 인도네시아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지난 7월 15일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에서 진행된 보고식에서 이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도요노 대통령은 유혈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으나, 추가 조치를 취하기에 앞서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가 보고서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딜리교구가 이 보고서를 평가하기 위해 설립한 한 위원회는 보고서가 단지 과거에 여러 국제기구들이 이미 추정한 내용들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며, 책임자 처벌을 권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위원장인 아나클레토 마이아 다 코스타 신부는 7월 24일 UCAN통신에 이 보고서는 고문과 강간, 살인 피해자들의 “가슴을 찢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 특히 희생자와 가족들의 존엄을 무시했다”면서, “화해를 이루려면 응당한 처벌,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티모르 교회의 입장은 “정의를 실현하라”는 것으로, 이에 따라 당연히 “폭력을 저지른 범인들을 국제 법정에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며, 교회는 양국 정부가 희생자와 가족의 재활을 위해 노력할 것을 계속 촉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소한 두 나라 정부는 부모가 둘 다 죽은 피해자의 경우 교육비를 보조하는 보상은 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다 코스타 신부는 7월 15일 동티모르 가톨릭교회를 대신해 딜리에서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교회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유감”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기들이 동티모르인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인정할 용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엘리사 로바토(55)는 리키카의 한 성당에서 벌어진 학살극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녀는 이 기자회견에서 아직도 그 일을 잊을 수 없다면서, “민병대가 내 남편을 교회 안에서 죽였다. 그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에밀리오 다 코스타(57)도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그 사건을 저지른 자들의 체포와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 그는 또 두 나라 정부가 밝힌 “깊은 유감”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리키카 교회 사건은 친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성당 안에 피난해 있던 친독립파 활동가들을 죽인 사건이다. 리키카는 수도인 딜리 서쪽 34km에 있다. 피살자 수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인도네시아는 61명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현지 주민들은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리키카성당 주임사제인 라파엘 도스 산토스 신부도 사건을 목격한 당사자 가운데 한 명이다.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는 지난 2005년 8월에 두 나라의 화해를 촉진하고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점령 기간 중 일어난 인권 침해를 조사하기 위해 진실과 우의위원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인권운동가들과 변호사, 민간단체,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이 위원회를 설립하자는 제안 당시부터 반대했다. 처음부터 사실이 밝혀져도 책임자 처벌과 상관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진실위원회가 1999년경의 폭력사태에만 초점을 두고 있을 뿐 1975년의 인도네시아의 강점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잔학행위는 뺐다고 지적했다. 점령 기간에 죽은 사람 숫자는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연합(UN)도 비슷한 이유로 이 위원회의 활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UN의 ‘수용, 진실, 화해위원회’가 2005년에 발간한 보고서에는 거의 25년에 이르는 인도네시아 강점 기간의 잔학행위에 대한 8000건 가량의 증언이 담겨져 있다. UN보고서는 이러한 일에 책임이 있는 인도네시아 군 지도자들에 대한 처벌, 그리고 마찬가지로 독립운동가들이 저지른 어떤 잘못된 행위도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1999년의 유혈사태는 당시 UN 주관으로 치러진 독립 찬반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찬성 투표가 나온 뒤 인도네시아군과 연결된 친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수많은 살인, 방화, 파괴 등을 저지른 사건이다. UN은 당시 약 1000명이 죽었다고 추정하고 있으나, 인도네시아 관리들은 겨우 100명 밖에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동티모르는 그 뒤 UN의 잠정 통치를 받다가 2002년 5월 20일에 공식 독립했다. 인구는 약 100만 명이며, 95퍼센트가 가톨릭이다. 국호는 영어로 East Timor로 쓰다가 포르투갈어인 Timor Leste로 바꿨다. 인도네시아에 강점되기 전에는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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