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그리스도인이 전 공산주의반군 지도자가 이 나라의 새 총리가 된 것을 반기며, 그가 이끄는 새 정부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를 바란다.
네팔 공산당 대표 프라찬다는 8월 17일 카트만두에서 총리 선서를 했다. 이에 앞서 그는 앞으로 국회로서 기능하게 될 제헌의회 의원에 선출됐다.
프라찬다는 “용사”란 뜻으로서, 10여 년에 걸친 마오주의자의 투쟁을 이끈 푸시파 카말 다할의 별명이다. 1만1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싸움은 2006년 4월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끝이 났다.
네팔 지목 안토니 샤르마 주교(예수회)는 8월 19일 UCAN통신에 새 정부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를 바란다. 이 나라는 이전 정부와 부패한 관리들 아래서 힘든 시절을 보냈다. 우리는 새 총리가 산적한 어려움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성공을 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프라찬다는 관례대로 하느님 이름으로가 아닌, 인민의 이름으로 대통령 선서를 했다. 내 생각에 이는 그가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네팔에서는 마오주의로 알려진 공산주의 정부가 가톨릭교회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에 대해, 샤르마 주교는 “우리는 모든 마오주의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에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네팔 예수회 장상 로렌스 마니야르 신부는 새 총리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8월 20일 UCAN통신에 “프라찬다의 지도력 아래 새 정부가 봉건사회인 네팔에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란다. 또한 마오주의자들이 네팔을 세속국가로 가꿔 나가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네팔은 1990년까지는 왕이나 왕이 임명한 관리가 직접 통치했었다. 그러나 같은 해 일어난 민주주의 시위로 왕은 다당제 민주주의를 허용하고 절대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바꿔야 했다.
힌두왕국이었던 네팔에 소수종교에 대한 자유가 허용된 것은 1990년 이후에나 가능했다. 그러나 마오주의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군주제마저 폐지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했다.
통행금지와 심지어 경고사격까지 불러일으켰던 2006년 민주화시위의 영향으로 갸넨드라 왕이 2002년 5월에 해산시켰던 국회를 2006년 4월에 재소집하게 되면서 네팔 군주정에 대한 압력이 시작됐다.
당시 국회에서는 갸넨드라 왕의 권한 대부분을 박탈하고, 군사령관 임명권과 군 지휘권, 그리고 모든 공식문서에서 “왕”이란 표현을 삭제할 권한을 국회 스스로 위임받았다. 갸넨드라 왕은 1996년 이래 1만1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마오주의자와의 싸움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서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가 원상회복되자 마오주의자들은 2006년에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지난 4월 제헌의회 선거를 통해 마오주의자들이 가장 큰 정당이 됐다. 제헌의회에서 초안하게 될 헌법에서는 네팔을 힌두국가에서 세속국가로 바꾸겠다는 2006년 국회의 결정이 공식화될 것이다. 지난 4월 이래 제헌의회는 수세기 동안 이어져온 군주제를 폐지하고 람 바란 야다브를 네팔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샤르마 주교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소수이고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도 못하지만, 제헌의회가 이 나라의 헌법을 작성할 때 그리스도인의 의견을 반영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네팔 기독교교회협의회 칼라이 바하두르 로카야 총무는 8월 20일 UCAN통신에 “프라찬다가 총리에 선출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도 좋은 일이다. 마오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을 주도해 왔으며, 불의와 차별, 탄압, 압제에 대항해 끝까지 싸워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로카야 총무는 마오주의자들은 처음 무장투쟁을 시작할 때부터 세속주의를 지지했다고 밝히고, “그럼에도 새 정부가 더 큰 종교자유를 허용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말했다.
네팔 가톨릭교회를 대변하는 합법 단체인 네팔가톨릭협회의 가네슈 파라줄리는 8월 19일 UCAN통신에 “나는 마오주의자를 믿는다. 이들의 통치 아래 그리스도인은 자유와 안전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나 마오주의자나 모두 “평등과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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