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과 중국정부 둘 다 승인을 받은 쑨즈빈 주교(요셉, 이두교구)가 10월 23일 97살로 숨을 거뒀다. 쑨 주교는 중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주교로 알려져 있다.
신자들을 위한 위령미사와 시민과 종교 지도자들을 위한 추모식은 베이징 동남쪽 400km의 산둥성 칭저우(이두의 현재 이름) 대성당에서 10월 29일 아침에 열렸다.
교구행정 책임자 쑨원준 신부(38, 안토니오)는 10월 24일 UCAN통신에 쑨 주교는 건강했으며 지병은 없었다고 말하고, 고령에도 자기 관리를 잘해 정신이 맑았다고 덧붙였다. 쑨 신부는 쑨 주교와 같은 마을 출신이다.
10월 초 기온이 내려가면서 쑨 주교는 감기에 걸려 앓아누웠다가 병원에 입원한 지 9일 뒤에 숨을 거뒀다. 쑨 주교는 교구의 모든 사제와 수녀들이 그의 병상을 지키며 기도하는 가운데 새벽 5시에 숨을 거뒀다.
쑨 주교의 주검은 화장하게 된다. 유해는 대성당에 보관했다가 50km 떨어진 곳에 새로 짓고 있는 순례지에 묻힌다.
이두교구 서우광성당의 30대 여성신자는 UCAN통신에 쑨 주교는 “겸손하고 정이 많은 사제”였다고 말했다. 쑨 주교의 조카는 힘든 시절에도 쑨 주교는 믿음에 흔들림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쑨 신부는 쑨 주교가 이곳 교회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면서, “이두는 작은 교구이기는 하지만 쑨 주교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교구를 복구하느라 모든 정열을 바쳤다”고 지적했다.
2007년 교황청 연감에서는 이두를 지목구로 표기하고 있지만, 중국정부가 인정한 공식교회에서는 교구로 인정한다. 이두교구는 현재 신자 1만2000명에 20대 후반에서 40대 사이의 사제 6명이 있다. 쑨 주교가 4년 전 설립한 교구의 원죄없으신 잉태수도원에는 수녀 10명이 있다.
쑨 신부는 지난 20여 년 동안 교구에서는 성당과 경당 32곳을 지었으며, 1950년대에 정부에 몰수당한 오래된 성당 대부분은 아직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 초 종교 활동이 되살아나자 쑨 주교와 원로사제 녜원두 신부(보나벤투라)는 교구로 돌아와 교회를 되살리는 데 온 힘을 다했다. 녜 신부는 작년 겨울 88살의 나이로 선종했다.
중국교회 관측통인 람수이키(안토니오)는 쑨 주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쑨 주교가 외부의 지원도 거의 없이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이두교구를 복구했다면서, 이두교구는 지리적으로나 사제와 평신도 숫자로 볼 때 작은 교구라고 했다.
홍콩교구 성신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인 람은 10월 28일 UCAN통신에 “내가 아는 한, 쑨 주교는 숨을 거둘 당시 중국본토에서 가장 나이 많은 주교였다”고 말했다.
쑨 주교는 중국이 2000여 년 이어온 왕정시대를 접고 중화민국이 건국된 1911년에 태어났으며, 1923년에 소신학교에 들어가서 1939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는 1953년에 가톨릭신앙 때문에 체포돼 감옥에 갇혔으며, 문화혁명(1966-1977) 때도 감옥살이를 했다. 그 뒤 노동을 통한 개조를 위해 가죽제품 공장으로 보내졌다. 1980년에 풀려난 그는 이두로 돌아와 사목활동을 이끌었다.
쑨 주교는 산둥성에서 “자선자성(自選自聖)”된 주교 5명 가운데 한 명이다. 이들 5명은 1988년 4월 24일 함께 주교로 서품됐으며, 교황청은 나중에 쑨 주교를 승인했다.
쑨 주교를 포함해 올해 중국본토에서 숨을 거둔 주교는 모두 4명이다. 앞에 언급한 다섯 주교 가운데 한 명인 자오쯔핑 주교(야고보, 지난교구)는 지난 5월 96살, 천시루 주교(마티아, 헝수이교구)는 지난 1월 80살, 지하교회의 장밍위안 주교(요셉, 자오셴교구)는 지난 7월 77살에 숨졌다. 이들 모두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