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추운 날씨의 이른 아침에 원죄없으신 성모의 딸수녀회 정문 앞에는 갓 태어난 여아가 놓여 있었다.
수녀들은 아기를 수녀회의 진료소로 데려가 응급치료부터 했다. 아기는 검은 옷에 둘둘 말려 있었다. 수녀회는 하노이 남쪽 660km의 후에에 있다.
수녀들은 서둘러 아기를 국립병원으로 데려갔는데, 의사들은 아기가 얼마 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아기에게 세례를 줬다. 그 뒤 수녀들과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일하는 한 자원봉사 부부가 마리아를 입양하기로 했다. 이들 부부는 불교신자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날 밤 숨을 거뒀다.
수녀들은 조그만 마리아의 주검을 진료소로 데려가 작은 탁자 위에 내려놓고 주변을 꽃으로 장식했다. 수녀들이 마리아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수녀회 장상인 부이티봉 수녀(마리아)가 아기의 죽음은 “우리 수녀들에게 앞으로 생명운동에 더 적극 참여하고 생명의 수호자가 되라고 촉구한다”고 말했다.
다음 날 탄투이성당 주임 응우옌부 신부(베드로)가 마리아를 축복하고 나서 수녀들은 마리아의 주검을 가톨릭공동묘지에 묻었다. 마리아의 옆에는 여러 국립병원에서 낙태된 태아 8명의 무덤이 있다.
2년째 신학을 공부하는 응우옌티탄 수녀(마리아)와 응우옌티깜눙 수녀(데레사)는 진료소 일을 거들고 있다. 두 수녀는 UCAN통신에 버려진 아기의 죽음으로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 소아과를 공부해 버려진 태아들을 각별한 마음으로 보살피겠다고 다짐했다.
UCAN통신과 얘기를 나눈 다른 수녀들에 따르면, 아기의 죽음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과거에 운영했던 고아원을 다시 시작하라는 분명한 표지”라고 했다. 진료소를 책임진 응우옌티디엔 수녀(마리아베네딕토)는 지난 10월 30일에도 진료소 앞에 남아가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수녀들은 이 아이를 호찌민의 국립고아원으로 보냈다. 호찌민은 후에 남쪽 1050km에 있다.
그녀는 “우리가 고아원을 시작하게 되면 그 아이를 다시 데려올 것”이라고 했다.
의사인 디엔 수녀(65)는 지난 6월에도 한 국립보건소에 버려진 남아를 수녀원으로 데려왔는데, 수녀들이 양육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한 개신교 여성에게 아기를 맡겼다고 했다. 이 아이의 엄마는 에이즈환자다.
디엔 수녀는 올해 수녀원에서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 7명을 맞아들여 이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아이를 낳는 대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녀에 따르면, 프랑스 출신의 유진 마리 요셉 알리스 주교와 알렉상드르-폴-마리 샤바농 주교가 후에에 수녀회를 설립한 지 3년 뒤인 1923년부터 수녀들은 꽝찌성의 한 국립고아원에서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1927년에는 투아티엔-후에성에 고아원을 세워 고아뿐 아니라 전쟁 때 다친 아이들까지 보살폈다. 그러나 이 고아원은 1975년 베트남이 공산통일된 뒤 정부에 몰수됐다.
디엔 수녀는 수녀회에서는 1972년에 호찌민에 다시 고아원을 세웠지만 이마저도 2001년에 정부가 몰수해 갔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고아나 버려진 아이들을 돌볼 곳이 없다.”
수녀회 장상인 봉 수녀도 의사다. 그녀는 UCAN통신에 수녀회에서는 버려진 아이들, 특히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는 시설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봉 수녀는 전에 수도자였던 이들과 자원봉사자, 그리고 신자들을 불러 모아 자신들과 함께 가난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일하자고 할 계획이다.
디엔 수녀는 진료소는 1992년에 설립됐으며, 이 지역의 사제와 수도자, 불교 및 가톨릭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준다고 말했다. 또한 에이즈환자들을 방문해 영적, 물질적 지원도 한다.
수녀회는 수녀 304명, 수련자 47명, 청원자 22명, 지원자 225명이 베트남의 3대교구 가운데 2곳과, 22교구 가운데 5곳에서 일한다. 수녀회는 장애인, 소수민족, 나환자, 선상족을 돌보며,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숙식과 기초교육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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