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카라의 성 안드레아성당 건물이 완공이 가까워올수록 주임신부인 보치에크 코르다스 신부는 본당의 미래를 더욱 더 비관하게 된다.
성탄 전야에 코르다스 신부는 UCAN통신에 “때로는 완공되면 성당 건물을 팔아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고 말했다. 공사자재가 널려 있는 본당의 경당에서 진행된 성탄 전야 미사에는 겨우 15명만 참석했다.
부활 즈음해서 완공될 예정인 이 성당의 수용규모는 150명이지만, 현재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는 15-20명이 전부다. 2009년 부활절은 4월 12일이다.
코르다스 신부(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는 본당에서 회의와 세미나를 열거나 또는 가톨릭 축일과 다른 종교 축일을 함께 지냄으로써 성당을 이슬람인 등과 함께 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폴란드 출신의 코르다스 신부는 우즈베키스탄 가톨릭교회가 성사 집전에만 목을 맨다면 “가톨릭교회의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자라고는 유럽계 후손 몇 명에다가, 선교를 금지하는 엄격한 종교법 때문에 그는 이슬람이 다수인 부카라에 과연 성당 건물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부카라는 수도 타슈켄트의 서남쪽 450km에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인구의 88퍼센트가 이슬람이다.
코르다스 신부는 성당 건축이 시작된 2005년부터 줄곧 공사를 감독해 오고 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 뒤 이곳 가톨릭신자들은 한 가톨릭신자의 아파트에서 기도모임을 시작했다. 그러나 2002년 본당이 등록된 뒤에도 미사 참석자 수는 늘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마르칸드의 세례자 요한성당의 주일미사 참석자 수도 25명 내외고,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성당인 타슈켄트의 성심성당도 150명을 넘지 못한다.
부카라에 들어설 새 성당은 내부 장식과 가스시설, 수도시설, 전기시설만 빼고는 다 마무리된 상태다. 설계도로 보면, 이 성당은 종교 간 대화와 문화의 중심지로 계획돼, 사제관과 도서관, 우즈베키스탄 카리타스 사무실이 들어서게 된다.
성탄미사 뒤에 이어진 잔치 때는 경찰 두 명이 들이닥쳐 신자들의 수와 이들의 나이를 조사해 갔다. 개신교회도 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코르다스 신부에 따르면, 이웃한 사마르칸드에서는 경찰이 본당까지 조사해 갔다.
그는 “전에는 경찰이 우즈벡인이 있는지를 물어봤는데, 우리가 불만을 제기한 뒤부터는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독일계 가톨릭신자 베아테 크라머는 신자 수도 얼마 안 되는데 성당이 이렇게 클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마르칸드의 한 학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일하는데 이번 성탄 전야에 부카라를 찾았다. 그는 독일에서 그러는 것처럼 이 성당도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면 종교 간 모임이나 세미나 등을 개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곳 신자들은 오히려 낙관적이다. 나데스다 모니크는 성당이 큰 만큼 사람들도 많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다른 본당신자 자밀라는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녀는 고대 “실크로드” 도시인 부카라를 자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본당에도 더 많이 들리기를 바랐다.
부카라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섬유회사의 이소일 이사는 성당이 크니까 주변 사람들도 더 많이 끌어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코르다스 신부는 가톨릭교회의 전망은 밝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1년 이후에는 주로 정치와 종파적 불안 때문에 러시아나 다른 유럽국가에 가족이나 친지가 있는 사람들이 우즈베키스탄을 떠났는데, 지금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이 나라를 떠난다고 지적했다.
이런 여건을 감안해 부카라의 본당에서는 어떤 세례성사도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코르다스 신부는 성당을 문화와 교육, 종교관습의 중심지로서 모두에게 개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달에 한 번 코르다스 신부는 부카라의 여러 개신교파 지도자들과 만나, 함께 기도하고 다양한 신학적 주제로 토론도 한다. 그는 개신교 지도자들은 효과적인 복음화 방법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이를 구체화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코르다스 신부는 2006년 제1회 아시아선교대회와 2008년 아시아주교회의연합의 복음화에 관한 토론회에도 참석했었다.
“이슬람인과 협력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 따라서 교회는 이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