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기에 베트남 북부 교구들을 이끌었던 팜딘뚱 추기경(바오로요셉)이 89살로 선종했다.
베트남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추기경인 뚱 추기경은 2월 22일 오전 10시 하노이의 주교관에서 숨을 거뒀다. 이날 오후 5시에 모든 본당에서는 조종을 울렸다.
2월 23일 아침에 그의 관은 주교관 경당에서 부근의 성 요셉대성당으로 옮겨졌다. 성당에서는 응오꽝끼엣 대주교(요셉, 하노이대교구)와 쭈반민 보좌주교(라우렌시오, 하노이대교구), 당죽응안 주교(요셉, 랑손교구)와 사제들이 특별미사를 공동집전했다.
장례미사는 2월 26일 대성당에서 열리며, 그의 관은 대성당에 묻히게 된다. 뚱 추기경은 베트남의 세 번째 추기경이다.
2008년 1월 25일 대성당에서 있었던 뚱 추기경의 축일 기념행사에서, 당시 쭈반민 신부는 뚱 추기경에 대해 “모든 사람, 특히 고아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도와준 겸손한 아버지”이자, “검소한 삶을 산 훌륭한 목자”라고 말했다.
민 신부는 또한 뚱 추기경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북부 교구들에 교회에 충성하라고 촉구함으로써 용기있게 가톨릭 신앙을 증거했다고 추켜세웠다. 당시는 가난했으며, 종교 활동은 제재를 받았고, 성직자와 수도자는 감옥에 보내졌다.
뚱 추기경은 예수 성심 및 성모에 대한 신심과 사목활동을 통해 그리고 민속음악을 전례에 도입함으로써 신자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만들려 애썼다.
뚱 추기경은 1919년 팟디엠교구에서 태어났다. 1931년 황응우옌 소신학교에 들어간 뒤 1940년에 대신학교에 입학했다. 1949년 6월 6일에 사제서품을 받고, 1963년 8월 15일에는 거의 10년 가까이 비어 있던 박닌교구 주교에 서품됐다.
그 뒤 4년 동안 하노이대교구 교구장서리로 있다가 1994년 같은 대교구 대주교에 임명됐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같은 해 그를 추기경에 서임했다. 1995-2001년 베트남주교회의 의장을 지내고, 2005년 2월 19일 하노이대교구장에서 물러났다.
교회소식통들에 따르면, 뚱 추기경은 1963년 박닌교구에 한 수녀회를 설립하고 1996년에는 하노이 전직 신학생회를 만들었다. 현재 두 단체의 많은 회원은 복음화를 위해 일한다.
소식통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신학생들에게 무신론을 가르치는 것을 거부해 신학교가 문을 닫아야 했던 1955-1960년에는 뚱 추기경이 직접 북부의 7교구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제양성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뚱 추기경은 본당에서 몰래 신학생들을 교육시키고 많은 사제를 서품했다.
1979년에는 고 팜반두 주교(빈첸시오, 랑손교구)를 주교로 서품하고, 여러 전쟁 난민수용소도 세웠다.
뚱 추기경은 하노이의 성 요셉대신학교 학장, 그리고 하이퐁교구와 훙호아교구, 랑손교구 교구장서리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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