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스테파노)는 선종했지만 그가 해온 일과 정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계속 감화를 받고 있다.
20년 전 김 아나스타시아(61)는 먹고 살기 위해 명동성당 입구에서 성물을 팔려고 마음먹었지만 망설였다. 왜냐하면 성당 안에는 이미 성물판매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추기경의 배려로 그녀는 성당 입구에서 조그만 좌판을 열고 묵주와 십자가 등을 팔 수 있었다.
그녀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명동성당으로 조문을 왔냐면 추기경님이 특별히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2월 16일 86살로 선종했으며 장례미사는 20일에 있었다.
최윤경(아폴로니아, 33)는 김 추기경이 죽던 날 저녁 삼종기도 뒤에 여느 때와는 달리 명동성당의 종소리가 또 울리는 것을 들었다. 서울대교구 직원인 그녀는 김 추기경이 선종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눈에 눈물로 가득했다”고 했다.
최윤경의 별명은 “최 추기경”인데 사람들이 그녀가 김 추기경을 많이 닮았다고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녀가 김 추기경에게 자신의 별명을 말하자 둘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고 그녀는 기억했다.
비신자를 포함해 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문과 장례미사에 참가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찾았다고 서울대교구 관리는 말했다. 명동성당으로 가는 길을 따라 추모행렬이 3킬로미터나 이어졌다. 추모객 중에는 전, 현직 대통령도 있었다.
개신교 신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2월 17일에 조문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가 현대건설 부사장이었던 1970년대 초에 자기 회사에서 지은 병원을 가톨릭에 위탁하기 위해 김 추기경을 처음 만났다.
김 추기경이 “왜 가톨릭 교회를 선택했냐”고 묻자 이 대통령은 “가톨릭 사제와 수녀가 환자들을 더 잘 보살피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 대통령은 군대입대 시기에 진료받으러 동사무소에서 소개한 병원에 갔는데, 시설도 열악하고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한 가톨릭 병원에서 수녀님들이 정성껏 보살펴 줬다”고 기억했다.
또 조문객 가운데는 1980년대 김 추기경과 대립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있었다.
1987년 명동성당에서 민주화를 위해 농성 중이던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성당 내로 들어가겠다고 통보하러 온 전두환 정부관리에게, 김 추기경은 “경찰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보게 될 것이고, 나를 쓰러뜨려야 신부님, 수녀님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을 쓰러뜨려야 학생들을 볼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의 첫 가톨릭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토마스 모어)는 군부독재 통치시기인 1970-1980년대에 두 번 구속수감됐는데 김 추기경이 감옥으로 자신을 찾아왔던 일을 기억했다.
가톨릭 신자들, 그 중에서도 서울교구 신자들은 김 추기경을 좋은 목자로 기억한다. 김 추기경은 1968년에서 1998년까지 30년 동안 서울대교구를 이끌었다.
의정부교구 최성우 신부(요한)은 김 추기경을 사제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 아버지와 같았다고 했다. “매우 바쁘고 많은 문제와 부딪혔지만, 김 추기경은 영명축일 날이면 사제 하나하나에게 카드를 보내거나 전화를 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 김 추기경은 그에게 보내온 모든 이메일에 답하려고 애썼다.” 의정부교구는 2004년 서울대교구에서 분할됐다.
전 주일학교 교사인 정진우(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김 추기경이 자신과 같은 주일학교 교사를 위해 해마다 미사를 봉헌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김 추기경의 강론은 유머와 재치가 넘쳤고 인간적이어서 우리는 그 미사가 늘 좋았다. 나는 김 추기경과 같은 가톨릭 지도자가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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