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곤(69, 미카엘)은 2002년에 정부 무역협상단 고문 자격으로 에티오피아에 갔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에티오피아에 두 달간 머물면서 그곳 주민들의 참담한 생활여건을 직접 보게 됐다. “피골이 상접한 많은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잘 곳도 없이 그냥 거리에서 잠을 청했다.”
그는 그곳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한 한국인 수녀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가 다니는 삼성동성당의 연령회와 함께 이 수녀의 사업을 돕기 위해 후원금을 보내기로 했다.
아프리카 후원회인 ‘백화난만(百花爛漫)’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당시 그가 회장을 맡았던 연령회 회원 12명은 2002년 12월 14일부터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다.
윤성곤은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한 공책과 연필을 살 수 있게 그 수녀에게 한 달에 100-200달러를 보냈다. 한국에서는 작은 돈이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2005년 11월에 백화난만은 본당의 공식단체가 됐다. 본당사제도 성전의 촛불 봉헌함 후원금을 보태고 본당신자들에게 가입을 요청하면서 이 단체를 후원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한국 수녀가 2005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이웃나라 케냐의 자선활동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현재 백화난만의 회원은 370명이다. 삼성동 본당신자는 4000여 명이다.
이 단체는 현재 케냐에 매달 2500달러씩 보내 거리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육시키며 소녀들에게는 양재 같은 직업기술을 가르친다. 또한 매달 별도로 1500달러를 보내 케냐 신학생 3명의 양성도 돕고 있다.
백화난만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미사를 드려 선교사를 포함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백화난만 현 회장 김상근(펠릭스)는 때로는 본당신자들이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아프리카까지 도울 필요가 있냐며 불평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절대적인 가난으로 고통을 겪고 배고픔으로 죽어간다. 이런 사람들을 먼저 도와야 하지 않겠나. 한국에는 굶주려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몇몇 백화난만 회원들도 UCAN통신과 얘기를 나눴다.
이 루시아(87)는 40-50년 전에는 한국인도 많은 해외원조를 받았다고 지적하고, “나도 부자는 아니지만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돕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하느님의 모든 백성이 평화롭게 살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왕원이(81, 레지나)는 “내 작은 희생이 아프리카의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삼성동성당 주임 김숭호 신부(안드레아)는 평신도들의 이런 시도를 평신도가 중심이 된 초기 한국교회의 발전에 비유했다. “이 후원회는 참으로 눈부신 영적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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