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정치적 소요로 인한 폭동 때 사람들이 몸을 피했던 마지막 난민수용소가 문을 닫자, 한 사제와 난민들이 이에 안도감을 나타냈다.
6월 17일 동티모르 정부는 딜리 외곽에 있는 메티나로수용소를 폐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동티모르는 2006년 4월의 정치적 소요로 10만 명이 넘는 주민이 집을 등져야 했다.
메티나로는 딜리에 있던 65난민수용소 가운데 마지막 남은 수용소다. 난민들은 정부로부터 주택 건축 지원금으로 한 가구당 4500달러씩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들 난민 대부분은 토지 분쟁과 다시 고개를 든 폭력 때문에 귀향을 줄곧 연기해 왔다.
조제 하모스-오르타 대통령은 난민들에게 사과하고, 2006년 사태는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의 잘못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난민들에 대한 보상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딜리의 원죄없으신 잉태대성당 주임, 안젤루 산시냐 신부는 난민수용소 문을 닫기로 한 결정은 이 나라의 난민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당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에게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3년 만에 딜리의 65수용소 문을 닫기 위해 쏟은 당국의 노력은 이 나라의 발전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귀향한 난민들이 이웃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과거의 불화는 더 나은 미래를 가꿔나가기 위해 옆으로 제쳐놓아도 된다고 했다.
동티모르에서는 2006년 4월 동티모르 군인의 1/3이상을 해고하면서 집단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동티모르 서부 지역 출신인 해고 군인들은 이를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동부 출신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인도네시아 통치에 맞서 싸운 중심세력이다.
이런 긴장은 동부와 서부를 대변하는 집단 간 충돌로 번졌다. 당시 많은 주민이 폭력사태를 피해 대부분 성당과 종합시설에 세워진 수용소로 몸을 피했다.
난민인 카스미로 도스 산토스도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딜리의 수리크마스 지역에 있는 집이 불타버린 그는 가족과 함께 메티나로수용소로 피신했다. “그동안 고생은 말도 못한다…이제야 동네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의 이웃인 페드로 소아르스(39)는 산토스를 다시 보게 돼 기쁘다면서, 지도자들이 이 나라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테레진아 코스타(32)도 가족과 함께 메티나로수용소에서 3년을 지냈다. 그녀는 그동안 수용소에서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새로 찾은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UCAN통신에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반겨줄지 알 수 없어 늘 집으로 돌아가기가 겁이 났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정말 행복하다. 동네 사람 모두가 우리의 귀향을 반긴다”고 말했다.
동티모르는 인구 100만 명 가운데 90퍼센트 이상이 가톨릭신자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동티모르는 상당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지만, 50퍼센트에 이르는 실업률을 포함해 사회 안전 문제와 인도주의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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