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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교회는 교계제도와 갈등 (인터뷰)

입력일 :2009. 08. 28. 

프란치스코 클라버 은퇴주교(예수회)가 새 저서인 “지역 교회의 형성”에서 참여적이며 토착화된 교회에 대한 자신의 전망을 밝혔다. 그는 이와 관련해 UCAN통신과 인터뷰에서 이러한 개념과 함께 교회 안에 생겨난 긴장과 기존의 권력구조에 대한 도전에 대해 설명했다.

클라버 주교(80)은 인류학자이기도 한데, 필리핀 북부의 소수민족인 본톡족 출신의 첫 주교였다. 그는 1961년에 사제품을 받고, 남부지방 부키드논에 있는 말라이발라이교구와 본톡-라가웨대목구의 교구장을 지냈다. 1980년대에는 필리핀 주교회의 사회행동과 정의평화위원장을 맡았다.

UCAN통신은 그가 케손시티에 있는 예수회의 로욜라신학대학에서 출간 기념회를 하기 이틀 전인 8월 24일에 이 책에 대해 그와 인터뷰를 했다.

UCAN통신; “지역 교회”(local church)를 어떻게 규정하십니까?

클라버 주교;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 사회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복음이 살아 숨쉬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주교, 사제, 수도자와 평신도로 이뤄진 교회입니다.

책에서 토착화를 강조했는데요?

토착화는 사람과 성령 사이의 대화이며, 지역 교회 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일어나야만 합니다. 신앙은 성령의 선물이며, 문화는 사람들에게 속합니다. 둘이 마주하면, 성령은 복음적 가치관에 대해 얘기할 것이고, 토착화는 문화적 가치관과 신앙적 가치관을 결합시키려는 노력입니다.

지역 교회를 건설하려는 운동이 왜 주춤해졌나요?

책이나 문서들을 보세요. 신학 잡지들은 지역 교회(local Church)에 대해 아주 자주 말합니다. (local church 대신에) “개별 교회”(particular church) 같은 용어를 고집하는 것은 오직 로마뿐입니다. 내가 이번 책에서 쓴 로마 교황청의 그 추기경은 지난 1998년에 있었던 아시아 주교 시노드에서 우리 아시아 주교들에게 “아시아 교회”(Church of Asia)가 아니라 “아시아에 있는 교회”(Church in Asia)에 대해 얘기하자”라고 말했는데, 이 또한 그런 시도들 가운데 일부입니다.

로마는 왜 “Church in Asia”를 선호합니까?

“~에 있는 교회”라고 하면 그것은 한 권력 구조의 일부가 됩니다. 그저 작은 한 부분인 것이지요. 반면에 “of& quot;를 쓰면 독립성이 더 큰 뜻이 있습니다. 내가 ”지역교회“(local Church)라고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아시아 주교들은 지난 1974년의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 창립총회 때 이 용어를 썼습니다. 이미 당시에도 그 자리의 아시아 주교들은 아시아에 있는 교회(Church in Asia)는 단지 지리적으로만 아시아에 있는 교회이어서는 안 되며, 아시아의 목소리로 말하고 아시아의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우리가 올바른 아시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시노드 중에 그 추기경은 이 용어에 반대하고 대신에 “아시아에 있는 교회”(Church in Asia)를 써야 한다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나는 이 용어 자체는 반대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교회”(Church of Asia)와 “지역교회”(Local Church)라고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로마가 받아들이지 않는데도 “지역 교회”의 비전이 실현될 수 있을까요?

로마에 대해 얘기할 게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얘기하도록 합시다.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쇄신을 얘기합시다. 성직자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에 관해 중요한 것은, 평신도들이 사제들과 활발하게 상호 반응하는 가운데, 현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장부터 일어날 때 아주 감동적입니다. 내가 기초교회공동체(BEC)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기초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꼭대기에서도 일어날 때, 이것이 참여의 온전한 의미인데, 우리는 진정한 제자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성공 요소는 무엇입니까?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리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고 맨 처음에 지적한 사람들은 인류학자들이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가치관이 바뀌지 않아요. 더 자주 변화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더 쉬워질 뿐이지요.

기초교회공동체는 어떻게 지역 교회를 촉진합니까?

기초교회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식별을 강조합니다. 가치관이 무엇인지,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이 식별하고 깨닫도록 합니다. 우리는 신앙을 나누는 공동체들을 강조합니다.

누가 이런 식별을 이끌어나갑니까?

지혜로운 마을 철학자들, 곧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사제들이 기초교회공동체를 방해하고 있다고 불평하던데요?

사제들이 가장 큰 장애입니다. 우리가 변화의 철학을 갖고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내가 부키드논에서 직접 겪었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나는 (주교로서) 기초공동체를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교구 안에 사제는 30명이었는데, 전부 예수회였지요. 4-5명의 젊은 사제들만 기초공동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다섯 명으로 시작했고, 전진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사제들은, 일어나는 변화를 보면서 그제야 아주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1983년에 그 교구를 떠날 때는 본당 35군데 가운데 33곳은 온전히 기초공동체 노선으로 바뀌었습니다. 평신도 지도자들과 사제들은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어떤 식별과 대중 참여의 사례가 이번 책에 들어 있습니까?

이념에 대해 얘기하던 한 평신도 남성이 있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나는 왜 맑스주의 이념이 그리스도교보다 더 매력적이었는지 물어보았지요. 그들 가운데 한 명은 맑스주의 이념과 방법론은 명쾌한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둠 속을 헤매며 복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지 식별해야 할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어요. 그 사람은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그런 문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장기 독재를 하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대중은 자신을 지지한다고 보여주기 위해 계획했던 국민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옳지 않다는 사목서한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투표는 사람으로서 대중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국민투표 참여를 거부하는 것이 가장 도덕적인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각 가정에서는 내 사목서한을 두고 식별하기를, 남편은 투표를 거부하고 아내는 투표를 하러가기로 했단 말입니다. 나는 크게 놀랐습니다. 가족은 필리핀 문화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지요. 아버지는 감옥에 가도 좋지만 누군가는 남아서 아이들을 돌봐야 합니다. 따라서 (투표를 하기로 한 결정은) 그들의 문화가 신앙이 요청하는 바와 대화하면서 나온 것으로, 책임감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전체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사려 깊은 사람들 말이지요. 참여 교회라는 것이 결국 그것 아닙니까?

그렇군요. 꼭 집어 말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제가 보기에, 권력의 문제입니다. 내가 이 책에서 성직자 중심 권력을 비판한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어떤 성직자들은 일치가 아니라 획일성을 기준으로 문제를 봅니다. 우리는 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은 다양성 속에서도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주교님은 이 책이 당신이 봉사했던 주교 직무를 요약한 것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보입니다.

내가 말라이발라이교구와 본톡-라가웨교구에서 경험했던 것을 말하기는 했지만, 독자들은 내가 민다나오(필리핀 남부 지방)의 교회 전체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군요. 나는 교회와 국가 간의 공생에 대해서도 논했습니다. 기초교회공동체는 교회 안의 변화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사회 안의 변화도 추구합니다.

기초공동체와 빈곤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가난한 동네일수록 기초공동체를 만들기가 더 쉽습니다. 도시에서는 아주 어려워요. 관심 자체가 없는 이들도 있고, 집단성이 약한 (cosmopolitan) 측면도 있습니다.

농촌에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공동체 의식이 있기 때문에 기초공동체가 더 잘 움직입니다. 마을 공소에 모이고, 서로들 간에 다 잘 알지요. 그래서 일부 사제들은 도시에서 기초공동체를 시작하는 데 반대 이유로 이런 측면을 제기합니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시에서 기초공동체가 더욱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로 모이도록 머리를 써 보세요. 기초공동체는 본당과, 교구와, 그리고 지역 교회와 긴밀히 묶여 있어야 합니다. 홀로 떨어진 외톨이 집단이나 분파처럼 되서는 안 됩니다. 자발적인 조직과 만들어진 조직의 차이를 강조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기초공동체는 “콜럼버스 기사단” 같은 신자 단체같이 회원을 선별해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입니다.

처음 사제가 됐을 때부터 훗날 이런 교회상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옛날 교회 식으로 교육받았어요. 라틴어로 미사를 드리고… 그러다가 바티칸공의회가 열렸는데, 참 혁명적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런 운동이 교계제도로부터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봅니까?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에 달렸습니다. 필리핀 교회는 최소한 지난 1991년에 있었던 제2차 필리핀 사목총회에서 이것이 우리가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저는 필리핀 교회는 희망적으로 봅니다. 참 시간이 많이 걸리고, 주교들은 (하나하나 체험하며)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수파와 진보파의 차이에 대해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보수파든 진보파든 간에 둘 다 닫힌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 안에 바로 해답이 있어요. 참여 교회에 대해 얘기하려면 교회에 대해 배우려 많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주교들은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가르치려고만 하지, 배우는 입장에서 보지를 않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사제 부족을 염두에 뒀나요?

“교회가 되려면 (사제가 집전하는) 성체성사가 있어야 하는데, 왜 당신은 (사제가 없는 기초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르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기초공동체는 성체성사를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체성사의 중심성에 대해 가르칩니다. 성체성사를 드릴 사제가 부족하다면 사제 독신 원칙을 완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지적하는 것은 교회의 모순입니다. 만약 당신이 성체성사의 중심성을 말하면서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성체성사를 드리지 못하게 상황을 만든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순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사람들이 심지어 성체성사의 기회를 빼앗긴다고 해도 사제 독신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 독신 원칙을 엄하게 실행시킨 것은 교회였습니다.

관심을 끌만한 또 다른 얘기들은 무엇인가요?

이 교회법 전체에 관해 주교들의 자문-토의 투표에 맡기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 문제의 핵심이라고 해도 될 것인데,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이 권력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 교회 안에서 참여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는 인간 존엄을 존중하지 않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기 발언을 할 권리가 있다고 교회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도 (한번 선출된 지도자라 해도) 늘 대중에게 의견을 묻는데, 교회는 이런 교회법을 강조함으로써 권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교회법에서 반대하는 부분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의견을 구할 때, 나는 당신의 생각을 물어볼 수는 있지만 이미 내 마음은 결정돼 있다면, 그런 자문 과정은 연극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주교 시노드가 열리지만 이미 문서는 다 쓰여져 있고, (시노드에서 참석 주교들의 의견을 듣는) 자문을 거친다 해도 최종 문서를 쓰는 것은 오직 교황뿐입니다. 자문을 구하지 않고도 그 문서는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참여 교회라는 개념 안에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권력 문제도 있고, 토착화 문제도 있지요. “지역 교회”가 교계제도에 그렇게 큰 위협이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기사원문 PHILIPPINES A & #39;participatory& #39; Church would challenge hierarchical power, bishop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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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사 내용중에 미사 시간이 잘못됐네요.. 미사시간은 오후 2시가 아니라 6시입니다....
    Said Stephen Yong Hun Yu on 2011-08-17 05:16:13
  2. 감동적인 구절이 있어 담아봅니다...".내 실수와 부족까지도 내 성장의 거름으로 사용하자"깊이 마음에 담고 실천하도록 노력 하겠읍니다.....
    Said su maeng on 2011-01-31 20:30:58
  3. 환경파괴를 막기위해 즉시 중단돼야합니다....
    Said 정인규 on 2010-11-28 17:26:25
  4. Fr Jack Trisolini,I remember so much, that you loved to all of foreigners Wo...
    Said 방 평화 신부 on 2010-11-24 09:09:35
  5. 덧글 감사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 연재가 한 번 더 남아 있습니다. 저희 홈피 ...
    Said cathnewskorea on 2010-11-09 06:39:35
  6. 감사한 말씀. 감사한 기사....
    Said Junsang You on 2010-11-08 15:41:27
  7. 안녕하세요. 덧글 감사합니다. 다른 의도는 없었구요, 단지 기사 내용이 인천교구와 관련 있어서 고른 것뿐입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앞으로는...
    Said cathnewskorea on 2010-09-24 13:36:42
  8. 왜 답동성당 사진을 이 기사에 넣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착각했어요. 등대의 집이 저 모양인가하고.. 교회에서 하는 일을 과대포장하는...
    Said Domine-j on 2010-09-21 08:29:37
  9. 좋은글 잘 앍었습니다,....
    Said Maryms on 2010-09-08 05:53:52
  10.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Said Maryms on 2010-09-03 04:4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