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한 신부(작은형제회)
제목 :가난한 어부(1881)
작가 : 피에르 퓌비 드 사반(1824- 1898)
소재지 : 프랑스 빠리 Orsay 미술관
예술이라고 할 때 얼른 생각나는 것은 풍요로움 삶의 열매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인간이 경제적으로 윤택해 졌을 때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 욕구가 강하게 표출되곤 했으며, 중세 르네상스의 극치를 자랑하던 피렌체나 베네치아가 바로 이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술이란 풍요로움의 바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와 반대인 가난을 통해서도 표현될 수 있음을 우리는 여러 예술가의 생애나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바로 이를 대표한다고 하겠다.
작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어떤 특정한 운동이나 풍조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성공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가난하기에 힘겨운 삶을 꾸려야 하는 어부의 모습을 통해 성서의 다음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계시고 군중은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루카 5,1, 4-5)
삶에 지친 듯 깡마른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배안에는 바다에서 사용할 노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배를 묶어둘 때 사용하는 밧줄이 전부이다. 어부의 열악한 처지를 말해준다.
어부는 기도하는 자세로 두 손을 모으고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그가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생계를 이을 유일한 수단이나 망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바다의 어디에도 고기가 보이지 않고 기구 역시 열악하니 허탕을 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앞선다.
여기에 더해, 언제 파도가 칠지 모르는 망망대해에 이 조그만 배로 나아간다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 모험이다. 이런 삶에 익숙해 있으면서도 항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기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덥수룩한 머리에 허름한 옷차림은 어부의 가난한 처지만이 아니라, 비록 입에 풀칠을 위해 억척스럽게 일해야 하는 처지이면서도 세상일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관심이 더 많은, 성서의 “야훼의 가난한 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어부의 뒤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여인이 아기를 꽃 위에 뉘여 두고 들판의 꽃을 따면서 행복한 모습으로 아기를 지켜보고 있다. 어부의 처지와 비길 수 없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고기잡이의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어부 뒤편에 있는 행복한 삶의 상징인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마태 5,3)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부의 처지는 비참한 가난의 상태이나, 그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이것을 수용하며 살아갈 때 어부의 가난은 정신적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성서적 교훈을 전하고 있다.
작가는 당시 유행하던 상징주의 표현으로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초자연적인 가치관과 종교적 가치관을 작품 안에 담았다.
작가는 의도는 결코 성서적 사건을 그린 것이 아니었으나 상징주의를 빌어 성서의 가치관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