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홍규 신부(산자연학교 교장)
중요한 것은 ‘나’
수업시간에 도망을 간 적이 있었다. ‘dancing wisdom’이라는 과목인데, 주로 몸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하였지만 몸 기도가 나에게는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영어로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데 몸으로 갖가지 감정을 표현하자니 자꾸 부담이 되었다.
젊은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도 왠지 부끄럽게 생각되었고 머리를 빡빡 깍은 아가씨와 음악에 맞추어서 여러 사람 앞에서 몸동작을 하는 것도 위신과 체면이 안 선다는 생각이 앞서니까 몸도 굳어지고 우선 눈을 뜨고 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남들이 어떻게 볼까, 이 나이에 이렇게 하면 저쪽 사람들이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등으로 마음이 복잡하니 우선 이 순간을 피해 버리자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이 시간에 같이 참여하는 제니라는 여학생이 있는데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자신의 몸을 표현한다.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는 손과 상체, 머리밖에 없는데 한 학기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것이었다. 휠체어를 타고도 저렇게 당당하게 표현하려고 온갖 애를 다 쓰는데 두 다리가 성한 나는 단순하지 못한 감정으로 자리를 모면하려고 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골수에 박힌 우리 문화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쉽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나인데 내가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 다음 단계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고립되고 소외되니 의욕도 떨어지게 되었다.
‘나’ 문화와 ‘우리’ 문화를 반반 섞으면 좋겠다
담당교수 마이클에게 나의 행동에 대해서 사과를 하니까 아시아 사람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소심하고 부끄러움도 많아서 보통 그렇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뛰쳐나가는 것도 용기라고 격려해 주는 것이었다. 내 안에 박힌 우리문화를 쏙 빼버리고 미국 문화를 내 안에 다운로드받으면 모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주어를 I(나)라고 하는 언어와 주어를 늘 we(우리)라고 하는 언어 간의 갈등은 여기에 이민 온 분들은 늘 겪고 있을 것이다. ‘나’라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문화와 항상 남들을 챙기는 ‘우리’의 문화를 서로 반반씩 섞으면 좋을 것 같다.
‘No’ 라고 말하면 왠지 미안하게 생각되고 심지어 죄의식까지 느끼는 우리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영어를 할 때에도 ‘Yes’와 ‘No’를 딱 부러지게 대답 못한다.
도망친 날, 나는 집에 돌아와 어두운 방에 앉아 그런 행동을 한 내 감정에 이름을 붙여 보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작은 초에 불을 켜고 조용히 내 마음의 톤을 느꼈다.
그 동안 내가 가지고 다녔던 수치심과 부끄러움, 체면과 위신을 촛불 안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러한 감정들을 내 안에서 흘러가도록 가만히 놓아두고 자신을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 머물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