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숙 수녀(안토니아, 성바오로딸수도회)
최양업 신부의 편지 모음집
오래전 명동분원에서 생활할 때였다. 서울에도 가볼만한 순교성지가 여러 곳이라서 9월이 되면 도시락 하나 달랑 싸들고 순례를 나서고는 했다. 평소에는 서소문 순교성지를 자주 찾았다. 산보라도 가는 양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다녀오거나 양성기 어린 자매들을 꼬드겨 성소를 위해 순교성인들의 전구를 청해야 한다며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순교탑에 새겨진 수많은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면 마음 자세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목숨을 걸고 신앙을 고백한 성인들의 현존 앞에서, 나로서는 가늠할 수도 없는 큰 신앙의 모범이지만 그분들을 따라 좀 더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푸르게 일어나는 것이다. 헝클어지고 나약해진 마음이 강건해지고 곧추세워짐을 느낀다.
[너는 주추놓고 나는 세우고], 이 책은 최양업 신부님이 쓴 편지글 모음집이다.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정세와 교회 사정과 민생 상태를 예리하게 관찰하셨고 1842년부터 1860년까지 거의 매년 당신이 체험한 바를 유창한 라틴어로 쓰셔서 스승 신부들께 보고하였던 것이다.
또한 최 신부님은 당신이 선발하여 페낭신학교에 보낸 신학생들에게도 여러 번 편지를 보냈으나 아쉽게도 그 편지는 남아 있지 않다.
신부님의 편지글은 당시 한국교회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크고 작은 박해를 거쳐 마지막으로 경신박해에 이르기까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목을 해야 했던 신부님의 기쁨과 고통 그리고 신앙과 인내를 볼 수 있다.
생존의 위협 가운데서도 성사 받는 데는 두려움이 없는 신자들, 몇날 며칠 밤길을 걸어서 성사를 받으러 오면서 기쁨에 겨워하던 신자들, 그런 신자들에게 성사를 거행하려다 외인들의 위협으로 미사보따리를 싸서 줄행랑을 쳐야 했던 일, 신자들의 통곡소리가 귀에 쟁쟁하니 신부님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애절함은 차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흔히들 김대건 신부님은 피의 순교를 하신 분이고 최 신부님은 땀의 순교를 하셨다고 한다. 실제로 최 신부님은 12년 동안 유일한 조선인 사제로서 조선 8도 중 5도에 산재한 대부분의 교우촌을 담당하셨고 박해를 피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산골짜기에 적게는 두어 명에서 많게는 50명 정도씩 흩어져 사는 근 6천 명 신자들에게 성사를 집전하시느라 해마다 7천여 리를 두루 다녀야 했다.
또한 교우들을 위해 책을 저술하는 일을 맡았는데 신자들의 일과기도서를 번역하는 일과 성교요리문답을 재검토하는 일이었다. 신자들을 위해 주요한 교리를 4․4조 가사로 지어서 보급했는데 이것이 바로 천주가사이다.
결국은 1861년 6월 한창 나이인 40세에 사목활동을 보고하려고 서울로 가던 중 겹친 과로로 장티푸스에 걸려 발병 보름만인 6월 15일에 사망하였다.
최양업 신부님, 그를 본 적이 없고 그의 목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가 남긴 편지글은 한 사제의 모습을 뚜렷이 각인시켜 준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점철된 삶, 끝없는 인내, 신자들에 대한 한없는 연민, 교회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 사목에 대한 성실함이다.
최 신부님의 죽음을 애석해하면서 다블뤼 안 부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최 신부의 뛰어난 덕행, 지칠 줄 모르는 열성, 두드러진 재능과 재질, 무슨 일이든지 해내는 능력 등으로 미루어 현재로서는 그의 자리를 메울 수 있는 길이 없다.”
최양업 지음│ 정진석 옮김│ 180쪽│ 5,500원│ www.paulin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