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홍규 신부(산자연학교 교장)
우리 모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청각장애, 언어장애, 시각장애등 우리는 흔히 장애라는 말을 사용한다. 과연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리고 장애라는 말은 차별과 일맥상통하는 말로 이해된다.
한때 우리 학교에서도 배려를 필요로 하는 아이로 장애라는 말과 대치하였지만 그런 태도는 장애라는 말을 사용할 때 느끼는 심리적 부담을 완화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장애학교에서도 다른 정상적인아이들을 일반아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학교의 장애아를 염두에 둔 말이다. 학교에서 오히려 스스로 그 아이들을 장애아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은 교육이 아니다.
그런 의미라면 장애 아닌 사람들이 있을까? 누가 완벽하단 말인가? 우리 모두는 완벽하게 장애로 태어났다.
우리 인간은 과연 인간을 교정할 수 있고, 수정할 수 있고, 교화시킬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가?
최근에 무슨 치료법도 엄청 지만 결국 인간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을 뿐이고 우린 안경이나 보청기처럼 지원을 받아 향상될 수 있을 뿐이다. 형무소를 자꾸 만들고 사형제도를 부활시킨다하더라도 범죄가 줄어드는가?
대안학교에 보내고자 하는 한 학부모를 만난 적이 있다. 이 학교가 좋아 형은 보내고자 하는데 동생은 공교육학교에 보내고자 하였다. 형과 동생을 같이 보내면 더욱 좋을 텐데요 하고 물어 보았지만, 그 부모님이 보기에 형은 장애나 모자라는 아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생은 정상이니 공교육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자식을 문제로 보는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교육하겠는가?
우리 모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다양성을 누릴 뿐이다. 아무도 이 차이를 무시하거나 하느님도 빼앗아 갈 수 없다.
장애라는 말이 장애를 만들고 편견을 만들고 틀을 만든다. 장애 장애라고 말을 하면 그 말이 현실을 만든다. 장애라는 말자체가 장애이다.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