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즉문즉답이다.
여행을 하다가 출가, 하지만 우연은 아니었다
-씨알 사상을 공부하고 있는데, 너무 많이 가지면 안 된다고 한다. 무엇이 소유이고 무엇이 무소유인가.
= 낙동강 가 모래밭에 앉아 모래를 손에 놓고 보면 내가 모래 한 알 같은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이 모래는 어느 산에서, 어느 바위에서 쪼개져서 구르고 굴러서 왔을까. 나는 강에 앉아 울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우리는 온 곳도 가는 곳도 모르고 이곳에 앉아 있다. 그 순간 존재에 대해 겸손해지고 친밀해진다. 알렉산더 대왕은 관 밖으로 두 손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 많은 영토를 점령했지만 마지막 가는 그 손엔 한 줌의 흙도 쥘 수 없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없으면 소유다.
-출가한 동기는.
=사생활은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여행을 하다가 출가했다. 하지만 우연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출가한 그 순간부터 불자들은 귀의했다고 얘기한다. 출가 전에도 마찬가지지만 출가 후 세상적인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출가해서 가르침을 배우고, 가르침을 실현할 때가 있고, 거둬들일 때가 있다. 지금은 실천할 때다.
-천성산 터널 뚫는 것 반대할 때, 여기다 뚫지 말고 다른 곳에 뚫으라는 얘기를 못하겠다고 하셨는데 왜 그랬나.
=제가 아팠기 때문에 다른 분이 아플 것을 쉽게 말하기 어려웠다.
-뉴질랜드와 한국을 오가면서 살고 있다. 있을 만큼 있어도 마음에 여유가 없다. 스님처럼 무소유하면 좋은가.
= 제가 무소유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보았다. 하지만 가지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난을 즐거워하지는 않는다. 무능한 부분도 있지만 그렇게 산다. 저는 보험을 든다든지, 미래를 위해 축적을 하지 않는다. 제가 즐겼던 것은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던 것이었다. 아침에 맑은 햇살을 쪼이는 것, 고요히 앉아 바람소리를 느끼는 것.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 것 등이다.
-아침에서 밝은 햇살 받고, 꽃 보고 하는 것도 소유 아닌가.
= 놓여 있는 것을 편안하게 느낄 뿐이다. 단식을 하고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도 많이 아팠다. 그러나 공포 없이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지금도 아픔의 현장에 함께하는 것에 감사한다. 조금이라도 제 역할 하는 게 감사하다. 순간순간 절망과 외로움, 분노, 견디기 힘든 시간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제가 있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있는 것이 별로 없는 동네와 없는 것이 없는 동네
-그런데 소유하지 않고 개발하지 않고 현대를 살아갈 수 있는가.
= 낙동강으로 다시 나오기 전에, 10가구에 노인들만 사는 오지마을에 있었다. 처음엔 시골 오지라고만 생각했지 그곳만의 문화가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다양하게 세상을 즐기면서 살아들 간다. 봄여름에는 망둥이 잡고 가을에는 노루 잡고, 겨울에는 멧돼지를 잡았다. 자연이 가진 풍요로움을 즐기며 살았다.
자연의 언어가 다양했고 노래나 생각의 정도가 열려있었다. 기계가 없고. 소가 밭을 갈고, 낫으로 벼를 베면서 사는데 논 10마지기, 밭 300평도 안 되는 살림이지만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 논밭에 10가지가 넘는 곡식을 다 심고 먹고살고 남는 것은 장날 내다 팔고 이웃과도 나누며 여유 있게 살았다.
지금은 상주에서 사는데 사람들이 몇 만 평씩 비싼 땅들을 갖고 살고, 경운기, 트랙터, 트럭, 승용차, 오토바이, 과일창고 등 없는 게 없는데도 빚이 없는 분들이 별로 없다. 산골짜기에선 어두워지면 다 문을 닫는다.
지금 사는 동네는 새벽부터 일을 해야 하고, 늦게까지 불이 안 꺼진다. 그런데도 힘들어한다. 이 켜진 불 속에 있는 것들이 기쁘게 하고, 평화롭게 하는가. 그 질문을 던져보자.
저는 불이 없는 곳에서, 외등이 없는 곳에서 살았다. 그런데도 누릴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나뭇잎에 반짝이는 달빛도 느끼고, 고요 속에 있으면 바람이 지나는 길들이 느껴진다. 하늘에서 부는 바람소리, 땅에서 올라오는 바람소리.
(다음에 계속)
<이 글은 조현 기자의 휴심정에서 제공했습니다.>
관련 기사 ‘무소유의 길’ 즉문즉설<1>-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