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5일 9시 명동성당서 장례미사
가난한 노동자의 아픔을 감싸며 반백년을 한국과 인연을 맺어온 벽안의 선교사 도요안 신부(미국명 John Trisolini, 살레시오회)가 선종했다. 73살.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도 신부가 지난 11월 22일 오후, 자신의 사제관에서 컴퓨터 책상에 앉은 채로 선종했다고 밝혔다.
노동사목위원장 허윤진 신부(안드레아)는 “도 신부는 가는 길 마지막까지도 내년 위원회 40주년 준비를 하는 등 열정적으로 일하셨다”며, “큰 고통 없이 참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신 것 같아 다행”이라고 밝혔다.
허 신부에 따르면, 도 신부는 1993년 신장암 수술을 받은 후 신장투석을 해왔는데, 어제 오전에도 신장투석을 받고, 허 신부와 같이 점심식사를 하며 자신의 사회교리에 관한 책 탈고와 생명윤리에 관한 책 집필 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후 피곤을 느껴 쉬겠다고 사제관에 들어간 뒤, 저녁식사를 위해 사제관을 방문했는데, 도 신부는 책상에 앉은 채로 눈을 감고 계셨고, 컴퓨터로는 생명윤리에 관한 교황의 문헌들을 검색하고 계셨다”고 덧붙였다.
도 신부는 1937년 2월 3일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해 62년까지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 영어 및 라틴어 교사로 일했다.
1967년 프랑스 리옹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도 신부는 6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교구 도림동성당 주임을 맡으며 영등포 공장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전태일 분신사건 이듬해인 1971년 서울대교구에 노동사목위원회를 설립했고, 이후 한국 노동자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힘써왔다.
1990년대부터는 외국인 사목을 전담하며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헌신하며, 이들의 대부이자 울타리 역할을 해왔다.
모든 것 내어놓는 가난한 삶 살아
허 신부는 “도 신부는 한국교회가 노동이라는 단어를 쓰기 이전에, 노동현장에서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주는 대변자의 역할을 해왔다”며, “자신의 세례명인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목소리’가 되려 애써오셨다”고 전했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픔과 삶을 몸소 보여주고 행해,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줬고, 마지막에는 시신까지 기증해 남김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 가셨다”고 덧붙였다.
도 신부의 빈소는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관구관 7층 대성당에 차려졌으며, 장례미사는 오는25일 9시 명동성당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