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으로 나오라
- 문정숙 안토니아 수녀, 성 바오로딸수도회
“세례와 견진으로의 초대”
어느 해 연중피정에서 세례성사에 대한 깨달음이 하도 벅차고 생생하여 몹시 기뻤던 적이 있다. 아직도 그때 설레던 마음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벅찬 기쁨은 한 해 동안 세례성사에 대한 책 한 권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나름 내가 받은 세례성사의 빛을 좀 더 깊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후 교리 코너에 서서 이것저것 성사와 관련된 책들을 뒤적여 보았지만 성에 차는 책을 발견할 수 없었다. 세례성사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대부분 세례성사의 절차나 부수적인 어떤 것을, 아니면 이론적인 면에서 외국의 교리서를 그대로 답습해 놓은 것 같아서 답답했던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이런 내용으로 가득하다. 신비, 생명, 성령의 이끄심, 빛, 어둠, 죽음 등. 그간 해결되지 못했던 나의 갈증을 넘치도록 확실하게 채워준다. 유명한 전례학자인 저자 리처드 신부는 성사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히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례성사를 받기 위해 물에 잠길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신비,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한테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그래서 우리 안에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신비를 설득력 있게 풀어 나간다. 바오로 사도가 로마서에서 누누이 강조했던 이야기들이다. 바오로를 쓰러뜨리고 다시 일으켜 세웠던 그 체험이 오늘 리처드 신부의 육성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나를 감동시키는 것 같다. 단지 종이에 인쇄된 문자가 아니라 내 체험을 다시 비추어 주어 내 안 깊숙한 곳에 함께 계신 주님의 존재를 느끼며 그 감사로움에 내 삶이 빛나는 것 같다. 실제로 주님의 빛은 나를 채우고 나는 그 빛이 더욱 충만하도록 내 삶을 부단히 그분께 맡겨드릴 것이다.
세례성사는 일회적으로 완성되거나 끝나는 사건이 아니다. 주례사제에게 “네, 끊어버립니다.”라고 대답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물속에서 숨을 쉬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동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이기적 성향을 거슬러 성령께서 비추어 주시는 비판적 의식으로 일상 안에서 복음적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내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저자는 성령의 비추심으로 거짓 진리를 거슬러 싸웠던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고도 유쾌하게 털어놓는다. 그의 이야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익혀온 관습이나 가치들이 얼마나 복음적이지 못한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의 경험은 바로 나, 우리의 경험이 아닌가. 이야기의 말미에 저자는 몇 가지 질문을 남겨 우리의 작업을 거들어 준다. 세례성사를 통해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을까?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생생한 신비에 눈뜨고 그에 환호하며 감사하는 삶, 빛으로 나갈 수 있을 터인데… 리처드 신부의 다음 책 「축제로 나오라」를 펼치며 고민에 빠진다.
리처드 N. 프라고메니 지음 │ 성찬성 옮김 │ 146쪽 │ 5,800원 | www.paulin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