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산악지대로 산림이 우거졌으며 차 농장으로 유명한 방글라데시 서북부 실헷 지역에 다녀왔다.
이곳 차 농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영혼들은 가히 “난민”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들은 1850년대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이곳에 처음 차 농장을 세울 때 인도의 여러 주에서 불려왔으며, 대부분 경작할 토지가 없던 부족민들이었다. 이들은 아름다운 곳에서 자신의 집을 짓고 찻잎을 따는 일로 부유해질 것이라는 말에 현혹돼 왔다. 이런 말은 현대의 인신매매범들이 그럴듯하게 지어낸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다.
실제로, 이들이 사는 현실의 집은 진흙으로 지붕을 덮은 비위생적인 곳이다. 이들의 하루 품삯은 48타카(600원)과 충분하지 않은 식량 배급, 최소한의 보건 지원이다. 그리고 사는 집은 적어도 집안의 한 식구가 여기서 일을 해야 지낼 수 있다. 만일 농장에서 일하던 식구가 죽으면 아주 불확실한 미래가 닥친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이고 교회는 이들에게 학교를 세워주기 위해 60여 년간 끊임없이 싸워왔다. 농장 주인들은 일꾼들이 불만스러워하는 것을 두려워해 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데 필사적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차 농장 사업은 쇠퇴하고 있다. 물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료인 차는 한때 방글라데시의 가장 큰 수출품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지나가버렸다. 5000만 킬로그램에 이르던 연간 수확량은 1000만 킬로그램으로 줄었다. 어떤 이유로든 차 농장이나 가공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 일꾼 가족들은 구걸 외에는 다른 수가 없다.
이들은 다른 직업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은 더 이상 뿌리가 없다. 1946년 인도에서 분리되고 1971년 방글라데시가 독립한 이후, 대부분은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버렸고 원래 문화와의 연결고리가 끊겼다.
종종 찻잎을 뜯는 여인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게 되는데 참 아이러니하다. 이들은 달력이나 광고에 사용되는데 화려하고 매력 있어 보인다. 이들의 실제 하루하루 삶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록 로날드 로자리오(UCA News 방글라데시 사무소장)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