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오사카 사카이에 사는 오타 가나코에게 오는 4월 7일 부활전야 미사는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그녀가 이날 세례를 받기 때문이다.
그녀는 “부모님은 불교신자였지만, 나는 결국 세례를 받을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심지어 결혼 전에 남편한테도 이 말을 했었다”고 했다.
물론 세례는 한 사람의 영적 탄생을 기념한다. 가나코에게 세례는 길고 때로는 아팠던 여정의 정점이 될 것이다.
그녀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가톨릭계 학교를 다녔다. 스스로 말하는 그녀의 가정사는 “복잡했다.” 그녀가 태어난 지 여섯 달 만에 어머니는 자살하려 했다.
자살 시도는 실패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심하게 다쳐 한 쪽 팔과 다리에 의수와 의족을 해야 했다. 그 뒤로,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했고 조각칼로 계속해서 자신의 손을 공격했다.
어릴 적 계속 가톨릭 학교에 다녔던 가나코는 “어머니의 문제를 겪던 중 때때로 학교에 있는 경당에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성모상과 십자가 고상을 바라보며 ‘도와주세요!’라고 애원했고, 가끔씩 내 마음의 절규를 내뿜곤 했다.”
이 시절을 되돌아보며 그녀는 이상하게도 가끔씩 가톨릭교회로 오는 그녀가 가족의 불교 신심에서 오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어머니가 매일 가정 제단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며 무언가 배웠을 것”이라며, “종교에 차이가 있음에도 주님께 이끄는 길을 택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라고 했다.
그녀가 26살 됐을 때 어머니는 죽었다. 어머니가 마지막 남긴 말 중에는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도 있었다. 당시 한 살짜리 아이가 있던 가나코는 이 일 이후 슬픔보다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가나코는 “이런 어머니와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실제로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생각했고,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길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교훈을 얻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여정 동안 어머니와 같은 약한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는 남편과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게 됐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고 집안일의 무게가 가벼워지자, 그녀는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교회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가나코는 학창시절 학교에서 만났던 수녀들이 있는 사카이 성당의 미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신앙에 대해 더 많이 배우는 과정을 밟기로 했다.
예비신자 과정에서 그녀에게 가장 매혹적이었던 것은 동료들과의 토론 중 성경의 세상과 그녀의 삶이 겹쳐지는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녀의 과거에 있었던 사람들과 상황이 계속 마음에 다가왔다. 그녀는 종종 어머니에 대해 묵상하며 “성경에 나오는 사람이 바로 나의 어머니야!”라고 생각했다.
가나코는 현재 공립 유치원에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아이들을 돕고 있다. 가끔씩 이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각각의 아이들과 함께할 방법들을 찾다 보니 신뢰감이 커졌다.
그녀는 “마음과 마음의 만남을 통해 이들과 유대가 더 깊어지는 것을 알게 될 때 아주 행복해진다”고 했다.
그녀의 집에는 학창시절에 받은 성모상이 여전히 있다. 아이들이 학교 시험을 위해 공부할 때 그녀는 아이들에게 부적인 오마모리로 묵주를 줬다. 아이들은 그 보답으로 그녀가 종교적 추구를 할 수 있도록 지지해줬다.
“아이들이 내가 세례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구요? 아이들은 아마 ‘엄마가 마침내 세례까지 받는군’하고 생각할 거에요.”
그녀는 “확실히 아이들은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종종 ‘성경을 좀 더 안전한 데 둘 수 없어?’라고 근심을 한답니다”라고 했다.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