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나는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현대인은 대략 35세까지는 교육을 받고 30여 년간 일을 하고 나머지 30여 년은 황혼의 정리기간을 갖는다”고 한다. 사제생활에 무슨 정년이 있을까마는 이런 기준에서 보면 나는 이제 제3의 인생기에 초년생이 된 것이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이 시기를 위해서 나는 뭔가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예전과 달라지는 이 시기에 그 무슨 대단한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롭게 주어지는 시기를 아무런 계획 없이 무조건 맞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건널목 앞에선 사람이 잠시 멈춰서 좌우를 살피듯, ‘성찰의 시간’을 갖는 가운데 나는 참으로 오랫동안 “부족하고 결점투성이 인간이 하느님과 이웃으로부터 너무나 과분한 은혜를 받고 살았다”는 것을 더욱 깊이 절감하게 된다.
그렇다. 되돌아보면, 고맙고 감사할 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 깊숙한 곳에 아직도 남은 상처, 치유되지 않은 상처도 있다. 그 누군들 예외가 있을까마는 그동안 주고받은 상처와 생채기를 하느님 앞에 치유해야 하는 것도 이 시기의 큰 숙제가 될 것 같다.
어처구니없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사제들 가운데 좀처럼 치유될 수 없는 상처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료 사제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처라는 것은 속일 수 없는 현실이다.
사제들의 동료애와 동지애, 깊은 우정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너무나 인색하고 야박하고, 서로 믿지 못하고, 또 때론 무례함을 예사로 여기는 풍토에서 고귀하고 존귀한 사제직의 품위를 우리 사제들 스스로가 허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남 보기가 민망한 풍속도는 오늘 우리 교회 안의 세속화의 주범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 본다.
사실은 사제들 간의 문제라고 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목현장에서 ‘천박한 장사꾼’ 같은 3류 경영인이 되고 마는 교회 풍속도를 재점검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남에게 줄 것은 주고, 조금 후하게 대접하고, 여유롭고 품위 있는 사목경영을 어디서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할는지?
교회의 미래를 위해, 비굴한 구걸과 강요된 봉헌으로 야박하고 인색하여 돈을 남기고 벌어서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사목적 효용을 극대화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헌금하게 하는 ‘뜨거운 사목경영’, ‘감동의 사목경영’은 없을까?
지난 30년 동안 교회 안에서 일하면서 나의 숨통을 조였던 것이 바로 전근대적 교회의 근시안적인 ‘옹졸하고 인색한 교회경영’이었다고 고백하면, “얘야, 너부터 잘해라!”라고 그 누가 핀잔을 줄까? 아니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그만하라고 손사래를 칠까?
김일회 신부(빈첸시오)/ 인천교구 부평1동성당
<이 글은 기쁨과희망 사목연구원에서 제공했습니다.>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