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영)
우리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때 우월감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또한 소수 집단을 돕는 데 돈을 쓰기보다는 다수의 필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하셨다.(마태 25, 40) 나는 이 말씀은 우리가 소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전체에게, 심지어 우리 자신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사회복지는 사회적으로 비용이 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달 초 미국의 한 교통전문 사이트에서는 서울의 지하철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지하철로 뽑았다. 그 평가에서, 서울 지하철은 2위인 도쿄의 지하철과 같은 수준으로 깨끗하면서도, 스크린 도어가 있어서 마치 미래에서 온 느낌을 주는 장점이 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이라면 이것이 원래는 자살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알다시피 한국은 지난 몇 년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 나 자신도 약 25년 전에 지하철 자살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스크린 도어가 처음 도입될 때 효과에 비해 비용이 너무 든다는 비판이 많았다. 서울 시내의 지하철역 수는 지금 351개나 된다.
그런데 스크린 도어는 자살 방지 효과 외에도 기차 바퀴와 철로가 마찰하면서 나는 소음과 먼지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자 시나 그림 같은 예술 작품들이 스크린 도어 위에 등장해 시민 정서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나아가 정부와 지하철 공사는 스크린 도어의 벽이 좋은 공공정보 게시판으로 쓸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 벽은 상업광고 공간으로도 팔려 지하철 수익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소수나 특정 집단을 위해 도입된 기술이 예상을 넘어 집단 전체에 이익이 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우리가 지금 타고 다니는 형태의 자전거는 원래 “안전 자전거”라는 이름으로 발명됐는데, 그 이전의 (체인도 없는) 큰 앞바퀴 자전거가 타기 어려웠기 때문에 여성들이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였던 것이다. 처음에 남성들은 이 자전거를 “아녀자 자전거”라고 깔봤다. 하지만, 금세 그들도 이 안전하고 타기 쉬운 새 자전거를 선택했다. 이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형태의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자동차의 오토 기어도 비슷한 사례다. 두 손과 두 발이 동시에 모두 필요한 수동 기어와 달리, 오토 기어는 제1차 대전 뒤 급증한 상이군인들이 한 팔이나 한 다리가 없이도 자동차를 몰 수 있도록 도입됐다. 그리고 지금은 사지가 멀쩡한 많은 이들도 여러 다른 이유에서 오토 기어가 달린 자동차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이”에게 해 주는 것은 실상은 전체에게 해 주는 것이다. 설사 바로 그런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을지라도 말이다.
By 박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