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풍 신부는 2009년에 잠비아에 있을 때 가난한 아이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몽골에서,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부룬디와 라오스에서, 그리고 올해에는 스리랑카에서 나눠줬다.
이 일은 단순하다. 아이들에게 이 카메라로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찍어오라고 해서 그 사진을 한국에서 전시하는 것이다. 이 카메라가 “꿈꾸는 카메라”다.
“보통 우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불행과 절망이 있고 그것에 대처할 방법도 없는 듯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딜레마가 시작된다. 세계의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와 같이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현실적인 사진들인데, 자선기관들이 재정지원을 호소하면서 흔히 쓰는 그런 종류의 사진들과 매우 다른 사진들이 나오는 것이다.
“사진을 보면 다들 웃고 있다. 그 아이들이 찍은 사진에는 비록 가난한 환경이지만 웃고 있는 친구와 부모들이 나온다. 우리가 보는 눈과 그 아이들이 보는 눈이 서로 다른 것이다. 그들은 꿈이 있고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차 신부는 전시회에 왔던 한 중년의 엄마가 울던 것을 되새긴다.
“왜 우느냐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내 아이들은 이 사진의 아이들처럼 크게 웃고 미소 짓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꿈이 없다.’” “우리 아이들은 가난한 나라 아이들보다 훨씬 더 가진 것이 많아서 갖고 싶은 것은 거의 대부분 가질 수 있지만 실은 아무런 꿈이 없다.”
이 사업은 처음에는 그저 재미로 시작됐다가 나중에는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의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로 발전했다.
차 신부는 처음에는 무슨 구체적인 원조 사업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런 어린이들을 1년에 서너 차례 방문하면서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깨끗한 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물을 파줬다. 공부할 책이나 문방구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전해줬다.” 이 단계에 이르자 이 일은 일종의 원조 사업이 됐다.
필요한 돈은? 간단하다. 차 신부는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팔아서 기부금을 모은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일종의 전문 사진작가가 되는 셈이다.
“그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다 사줄 돈을 모을 수는 없다. 다만 할 수 있을 만큼 할 뿐이다.”
의정부교구 소속인 차 신부는 1년이면 6달을 여러 본당들을 찾아다닌다. 지하철로 하는 일종의 서울 북부 여행처럼. 그래서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책을 한 컨테이너만큼 구해서 보냈다. 잠비아에는 도서관도 세웠다.
태양광 전등과 시청각 장비도 보냈다.
내년에는 캄보디아와 차드로 갈 예정이다.
“다른 나라를 도울 때는 그 나라의 상황과 환경, 생활양식과 문화를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잘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가난하니까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이해하면서 돕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돕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기사 원문: Priest spreads understanding through disposable cameras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