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복지학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가 교실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노인복지가 뭐죠?’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한다.
노인복지=노인일자리라는 얘기다. 이러한 물음을 학생들에게 던지고 그 답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무겁다. 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미래의 사회복지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할 젊은 학생들이 노인복지를 노인 일자리 창출로 이해하고 있을까? 젊은 날 좁게는 가정을 위해 넓게는 지역사회와 이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인 노인들에게 나이가 들어서도 일터로 내몰려고 생각을 할까? 노인복지를 노인들이 편안하고 품위 있게 황혼을 보내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전문적 일로 이해하지 못할까?
이 같은 인식은 이들의 탓도 아닐 것이다. 이 사회 공동체가 복지를 아직도 시혜, 선별적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기인한다. 아직도 복지를 가난한 이들에게 대한 원조 정도로 인식하는 사회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얘기다. 복지를 권리, 보편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젊은 날 가정과 이 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이들을 더 이상 노동시장으로 내모는 게 복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서 교회는 자유로울까? 아니다. 교회 역시 노인에 대한 인식이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한국교회의 노인사목은 말 그대로 ‘늙은’ 상태다. (가톨릭 신문, 2012. 5. 13 12쪽) 한국교회의 노인사목 활동을 살펴보면 이러 사실은 여실히 드러난다.
대부분의 교구에서 청소년 관련 사목부서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반면, 노인사목부가 있는 곳은 서울대교구와 대전교구 단 두 곳뿐이다. 서울대교구가 노년기와 관련된 도서 발간과 심포지엄, 노인신자 대상 욕구조사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편이다. 그나마 있던 프로그램들은 홍보와 관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전교구 ME의 시니어 주말, 필리핀 교회에서 개발한 ‘오름회’ 등 노년신자들에게 좋은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중단된 상태다.
교회 고령화 속도, 사회보다 빠르다
노인사목의 부재는 고령화 속도를 한국사회와 한국천주교를 비교해보면 더 심각하다.
한국 사회는 2000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2퍼센트로 고령화 사회에 도달했다. 2018년에는 14퍼센트를 넘어 고령 사회에, 2026년에는 20퍼센트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문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논의돼 왔기 때문에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가 됐다.
그러나 한국천주교회의 고령화 문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4월 주교회의가 발표한 ‘2011년도 한국 천주교회 통계’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신자가 모두 75만7천3백8십5명으로 전 신자의 14.6퍼센트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한국사회 보다 훨씬 빨리 늙은 것이다.
아울러 2001년과 연령대별 증감을 비교하면 교회의 고령화를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19세 이하 신자는 10년 전에 비해 24.4퍼센트 준 반면 50대는 125.2퍼센트, 70대 이상은 127.5퍼센트 늘었다.
그렇다. 한국천주교회의 고령화 속도는 한국사회 전체보다 빠르고 그로 인한 갖가지 문제점과 대안들이 논의 되어야 될 시점에 와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노인사목 즉 건강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전무한 상태에서 치매 등 건강 문제로 타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될 노인 요양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심각하다.
노인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영향과 교회
한국 사회는 지난 2008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수발보험’ 또는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인하여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사회적 연대원리에 의해 제공하는 사회보험 제도이다.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수급자에게 배설, 목욕, 식사, 취사, 조리, 세탁, 청소, 간호, 진료의 보조 또는 요양상의 상담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고령화 현상을 겪고 있는 선진국들은 앞서 다양한 방식으로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 중에 있다.
이 제도는 한국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노인의 치매, 케어 문제를 가족의 문제에서 사회의 문제로 인식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아직도 노인 요양원에 무모를 모시는 것에 대해 부모나 가족이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에 놓여 있지만 점차적으로 인식이 변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노인요양원에 부모를 모시는 게 ‘신고려장’이라고 느끼고 부모는 분노하고, 자식들은 죄책감을 갖고 있지만 이 또한 변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노인 장기 요양에 대해 노인들 스스로도, 자식들 역시도 시행 4년째인 현시점에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더 이상 병든 노인들의 케어를 가족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 낸 복지 시스템이 바로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 인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기 전 한국사회는 병든 노인들을 돌보는 것은 전적으로 가족의 몫으로 생각했다.
그렇다. 이 제도는 복지를 선별적에서 보편적으로 좌클릭하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치매 어르신 케어 문제를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 이 사회의 책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가족 중심의 유교적 사회가 갖고 있었던 ‘효’의 개념을 바꾸고, 이미 노인이거나, 노인으로 접어드는 세대들에게도 더 이상 가족이 아닌 요양원이 자신들이 마지막 삶을 살아야 될 곳으로 인식케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 제도는 시행 초기이고 이 제도를 통해 일부 노인(요양등급 1, 2급)들이 가족을 벗어나 전문 요양원에서 케어를 받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이들이 남은 여생을 훌륭히 보내다 품격 있는 죽음(Well Dying)을 맞고 있다곤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이 제도가 정착단계에 있고 인식을 떠나 이 제도의 혜택을 확대할 수 있는 제정여건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의 경우 대부분 요양등급 1, 2급을 받아야 가능하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3등급을 받아도 예외로 입소가 가능하지만 3등급의 경우 건강한(?) 노인으로 분류가 되어 이러한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장기요양등급 1, 2등급 판정을 받기위해선 정말 중증 질병을 얻거나 심한 와상 환자, 심한 치매에 걸려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즉 건강하지 못한 노인들에게 이 제도의 틀을 들이대기엔 아직도 이에 대한 충분한 재정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고, 인력과 시설 또한 2008년 이후 수없이 많은 노인요양시설이 생기고 있지만 등급 판정을 받지 못한 잠재적 수요자들을 생각할 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현 상황에서 사회보다 훨씬 고령화가 빠른 교회는 장기요양에 관심을 충분히 갖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한국교회가 요양시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교회가 사목적 측면에서 기획하고 운영하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젊은 시절 한국 사회를 위해 헌신했듯 교회 안에서도 그들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기여해 왔다. 그러기에 한국교회는 병든 노인들, 이들을 보살피는 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이에 맞는 사목적 대안 즉 교회적인 운영방식으로의 요양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이들에겐 의료서비스를 넘어 영적 서비스가 더더욱 시급하고 이것을 통해 품위 있는 여생을 보낼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최정근: 서천군 장애인종합복지관 부관장, 건양대학교 사회복지과 겸임교수)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