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유명한 한국인들은 지금도 개미다. 2011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인은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했다.
그러나 한국인은 더 이상 개미가 아니다. 마치 베짱이처럼, 저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해 12월 30일에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가정의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은 겨우 2.7퍼센트다. 100원을 벌면 97.3원을 쓰고 2.7원만 저금한다는 얘기다.
한국인의 가계저축률은 1988년에 24.7퍼센트로 가장 높았고 1990년대까지는 20퍼센트 대를 유지하다가 1998년에 아이엠에프 위기를 맞은 뒤 한자리 수로 급락했다.
그런데 저축이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은행이나 정부가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아닌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경제 주체들은 한국 가계가 지고 있는 1000조원의 부채에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오는 2월에 취임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서두르고 있는 현안이 바로 빚 문제다. 박 당선인은 돈을 빌려 집을 샀다가 빚 때문에 파산위기에 처한 하우스푸어 문제 해결에 20조원의 특별 기금을 만들어 쏟을 계획이다.
하지만 그렇게 적은 돈으로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빚은 결국은 갚아야만 문제가 끝이 나고 경제가 비로소 다시 성장하기 시작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무슨 돈으로? 한국인은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지만 베짱이처럼 저축은 하지 않고 있다. 은행에 갖고 갈 돈도 없다.
그런데 15년 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1997년 말에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이 있은 뒤, 파산상태의 한국이 외화를 얻기 위해 팔 수 있는 것은 각 가정의 금뿐이라는 정부의 호소에 무려 350만 명이 결혼반지 등을 들고 은행 앞에 줄을 섰다. 그렇게 모아진 금이 227톤에 이르렀다. 2008년에 중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고가 1000톤 남짓이라는 데 비교하면 그 규모가 짐작된다. 나는 그때 결혼반지만은 마지막에 집에 남겨놓기로 했지만, 그때 결혼반지를 영원히 잃은 부부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당시 김수환 추기경도 몇 가지 금붙이를 들고 이 금모으기 운동 행렬에 동참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수줍은 표정으로 자기가 가져온 금붙이들은 자기가 모아 놓았던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자신도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고 싶었는데 일반인과 달리 집안의 금이 없던 차에 이 사정을 알고 몇몇 지인이 선물했다는 것이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보고서는 저축률이 낮은 이유로 1998년 이후로 한국인은 물가상승에 비해 임금이 적게 오른 데다 빈부격차가 심해져서 저축할 돈이 크게 줄었다고 지적한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신뢰의 부족이다.
대중은 당시에 파산에 직면한 정부와 대기업을 돕기 위해 반지까지 내놓았지만, 그 뒤로 배신당했다. 정부는 물론 위기에서 되살아난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은 여전히 어려움에 처한 대중을 외면했다. 자기들은 현금을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대중의 지원이 절실할 때 약속했던 고용 확대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세 가지 근본이 있다고 했다. 식량과 국방, 그리고 신뢰다. 그리고 이 가운데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설사 돈이나 무기가 없더라도 신뢰만 있다면 국가는 다시금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기에 교회가 가난해서 저축할 돈이 없음은 물론 저축해보았자 뭐하느냐는 좌절에 빠져 있는 대중을 도울 일이 있다. 교회는 신앙과 믿음의 전문가이지 않은가.
실은 교회는 약 50년 전에 온 국민이 가난하던 시절에도 자신이 신뢰의 전문가임을 잘 입증해 보인 적이 있다.
1960년 5월 1일 노동절에, 메리놀 수녀회의 메리 가브리엘 수녀(1900-93)는 부산에 성가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신협이었다. 그리고 다음 달인 6월에는 서울에서 장대익 신부가 두 번째 신협을 건설했다.
가브리엘 수녀는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전쟁과부들을 돕는 일을 하던 중, 이들이 외국원조에 의존적이 되고 장래에 희망을 갖고 있지 못한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스스로 자신감을 키워 자립할 수 있도록 신협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신협은 조합원 수 586만 명에, 자산 규모로는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로 컸다.
신협을 통해 수많은 교회 안팎의 가난했던 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 지금은 교회 구내에 둥지를 틀고 시작했던 신협들이 교회 밖으로 이전했지만, 지금도 오래된 성당 주변에서는 신협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이는 그 교회와 지역사회가 맺고 있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잘 보여준다. 신협은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 기여한 가장 큰 공로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근래에는 교회 안에서 저축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소리를 더 이상 듣기 어렵다. 교회 구성원들이 비신자들에 비해 더 부유해지고 교회 안에서 가난한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제는 저축의 중요성을 잊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저축을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도록 한국교회가 사람들을 도와야 할 때인 것 같다. 교회는 돈은 없지만, 신앙은 그야말로 풍부히 갖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은 공자가 지적한 것처럼, 정부가 가진 돈이나 권력보다 더 큰 자산이다.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