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클 켈리 신부)
중국의 덩샤오핑은 오뚜기로 유명했다. 그는 두 번이나 실각했으나 세 번이나 일어나 현대 중국의 모습을 일궈냈다.
상하이교구의 진루셴 주교(알로이시오, 예수회)는 그런 덩샤오핑보다 더 많은 좌절과 회복을 겪은 사람이다. 중국 교회 안에서, 교황청에서, 예수회 안에서, 그리고 공산당에 의해서 등등.
지난해만 해도 그는 상하이교구의 교구장직 승계를 위한 후계자 작업을 참을성 있게 추진했었는데, 그 후계자의 짧은 한 마디 연설로 전체가 엉클어져버렸다. 교황청 측으로서는 상하이교구 보좌주교로, 그리고 공식교회에 속한 그의 상하이교구로서는 부교구장 주교로 서품된 마다친 주교가 그 서품식 자리에서 천주교애국회 탈퇴를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로써 마 주교는 공산당의 미움을 사게 됐고 현재 주교 직무를 정지당한 상태다.
그러나 진 주교의 오랜 인생 중에는 이런 정도의 부침과 갈등, 환난은 늘 있던 일이었다. 그가 2008년에 출판한 회고록에는 이런 일들이 잘 담겨 있는데, 이 책은 2012년에는 영어로도 번역됐다.
그는 이 책에서 누구에게도 나쁜 평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순진했다”(naive)는 평이 제일 심한 얘기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평을 자기 자신에게는 몇 번이나 내렸다.
하지만 그의 평가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9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보여주는 앳된 얼굴 젊은이의 순수함이다. 그는 무려 27년이나 감옥에 있었지만, 이 회고록을 넘길 때마다 놀라움과 감사의 생각이 우러나온다.
그는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한 데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고, 다들 어려운 시절에 친지들의 보살핌조차 그와 그의 누이에게는 잘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학생 시절에는 머리가 좋아서 몇몇 자상한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업 성적이 올라갔으나, 동료 예수회원들과 또래 학생들의 질투만 자극했을 뿐이었다.
그가 1940년대에 유럽에서 뛰어난 학업 성적을 거두다가 갑자기 중국으로 돌아왔던 1951년으로 가 보자. 당시는 마오쩌둥이 국민당을 본토에서 타이완으로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한 지 2년째 되는 해였다.
그 이듬해, 그는 중국에 남은 예수회원들의 장상이 되었고, 상하이에 있는 큰 신학교의 학장이 됐으며, 주교가 떠나버린 상하이교구의 선임 사제가 됐다.
이어 1955년 9월 8일, 그는 다른 수백 명과 함께 붙잡혀 가 27년에 걸친 고립과 통제, 처벌의 시기를 보낸다. 공산당만이 지어낼 수 있는 죄목들로.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은 일기와 기록물과 기념물까지 다 포함해서 압수되고 파괴됐다.
이 회고록을 두고 그는 현존하는 어떤 기록이나 증거도 없이 오직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서 썼다고 겸손히 말하는데, 이 책에서 보이는 인물과 장소, 사건에 대한 그 자세함을 보면 그의 기억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만큼 더욱 더 두드러져 보인다.
이 책의 형식과 분위기는 아주 중국적이다. 중국과 라틴, 프랑스식 속담들이 풍부히 어우러져 이야기를 한 초점으로 모아주며 해석해 준다. 공자와 신약 성경, 토마스 아퀴나스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아주 교양 있고 세련된 중국 가톨릭 신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을 관통하는 이율배반성이 있는 것이다: 가톨릭 신앙을 굳건히 믿으면서도 한 중국인으로서 애국자가 되는 것.
이 책은 20세기 중국에 대한 1차 기록의 가치가 있다. 청 왕조의 멸망 직후부터 공화국 시절, 국민당의 지배, 일본의 침략, 공산당의 승리, 마오쩌둥 시기의 악마적 혼란, 소비주의 중국의 발전과 퇴폐한 공산주의의 부패와 타락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또한 하느님을 향한 열망과 이 경험을 나누려는 소원을 한 번도 잃어본 적이 없는 한 영혼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는 가톨릭교회가 중국에서 과거 13세기와 16세기, 그리고 19세기에 자라기 시작했다가 멈춰버렸던 실패를 이 21세기에 들어 네 번째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지난 30년간 굳건히 지켜왔다.
(마이클 켈리 신부(예수회)는 아시아가톨릭뉴스 대표를 맡고 있다.)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