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그림 신부)
<인디아 타임스>는 최근 마하라슈트라 주의 일부 가톨릭 신자들이 한 달력에 예수가 맥주 캔과 담배를 들고 있는 그림이 실린 것에 분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불경한 그림 때문에 자신들이 모욕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가 이집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거기에서 아마 맥주를 마셨을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맥주를 마셨다.) 예수가 어른일 때 포도주를 마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그가 살던 당시의 이스라엘 땅에는 아마 맥주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같은 깡통에 든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그림이 불경스런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은 나도 동의하지만,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아니다. 그 그림은 19세기의 서유럽의 신심을 나타낸 원작 그림을 좀 고친 것인데, 예수 자체가 아니라 그 그림을 갖고 장난치려는 의도였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원작 그림은 한 유럽인 모습의 예수가 해머를 갖고 도대체 뭘 하려는 지는 고사하고 간신히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그 그림 자체가 이미 불경스런 것일 수도 있다.
(원작 그림에 예수로 표현된) 천상에서 온 것 같은 비현실적 인물, 그리고 우리 가운데 강생하여 현존하는 하느님이었던 중동의 한 목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원작 그림은 예수의 강생이 실제가 아니었다고 믿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독성적이다. 적어도 맥주 캔은 예수가 인간이었다는 현실을 확인해 준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예술은 결국 우리 신앙의 모습을 만든다. 우리의 예술이 예수를 실제로 존재한 인간이 아닌, 그래서 비현실적인 다른 모습으로 그린다면, 강생을 믿는 우리의 신앙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예수가 성경과 전승이 우리에게 그에 관해 전해주는 것과 완전히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는 한 신자의 집에서 이미지가 예수를 이해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지 토론하다가 그 집 벽에 걸린 한 그림을 가리켰다. 그 그림은 실은 이번에 마하라슈트라에서 말썽이 된 바로 그 그림이었는데, 다만 맥주와 담배만 빠져 있었다.
나는 그 집주인에게 만약 아들이 저 그림과 같은 이미지로 예수를 생각하면서 자란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또 어느 날 예수가 진짜로 그녀의 집에 와서는 자기는 저 그림에 나오는 사람을 따라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면 당신은 뭐라고 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그 집을 방문했더니 그 그림은 치워지고 그 자리에는 십자고상이 걸려 있었다.
<인디아 타임스>는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마하라슈트라의 가톨릭 단체가 예전에는 마리아가 예수에게 그의 방을 청소하라고 말하는 모습의 그림을 올린 한 페이스북 글에 대해서도 이번처럼 분노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예수는 한 번도 방을 어지럽힌 적이 없다는 것이 신앙의 한 항목이 되기라도 한 것인가? 우리는 마리아가 그에게 앉았던 자리를 정리하라고 말한 적이 절대로 없다고 믿어야만 하는가? 마리아가 예수의 하녀이었던가? 아니면 예수가 지저분하게 살아도 마리아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가?
이 기사는 이 가톨릭 신자들이 왜 반대하는지는 분명히 쓰지 않았지만, 이들은 예수에 관해 비-강생적이고, 반-육신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생(Incarnation, 降生)이 옛날 영어, 그리고 직역으로는 “살이 됨”(enfleshment, 육화, 肉化)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이러한 반-육신적 관점을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이라고 한다. 가현설은 예수는 육신을 가진 실제 인간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몸을 허수아비처럼 이용해서 인간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고대의 이단이다. 이런 이단적 관점은 예수가 무엇을 어지럽혀서 청소를 해야 했을 수도 있다는 것도 부인하게 된다.
성모자에 관해 내가 아는 한 가장 의미가 깊은 그림들 가운데 하나는 독일의 막스 에른스트가 그린 “세 명의 목격자 앞에서 아기예수의 볼기를 치는 성모”(1926)이다. 이 그림에서 마리아는 아기예수의 머리 위 후광이 떨어질 정도로 힘차게 아기예수를 후려갈기고 있다. 방을 좀 치우라고 했는데 아마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대 세계에서는 체벌 자체를 나쁜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어쨌든 이 그림은 성모와 그리스도에 관해 아주 중요한 진실을 전해준다. 그들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마리아는 후광을 쓰고 있고, 예수는 떨어진 후광을 집어 들어 다시 쓰고는 펑펑 울며 방으로 갈 것이다. 평소에 식사 뒤에 먹던 맛있는 과자도 없이.
하지만 이처럼 어떤 잘못 때문에 벌 받는 소년의 아주 인간적인 모습 속에 진실한 신적 존재가 있다.
우리는 한 분이신 진짜 하느님께서 나사렛의 예수라는 한 진짜 인간으로 실제로 강생하셨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 신비를 전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의 예술과 우리의 말, 우리의 태도가 그것을 승인하고 추구하는 데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경우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윌리엄 그림 신부는 아시아 가톨릭뉴스 발행인이다.)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