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나바 치에)
나는 40년간 가정주부였다. 가정주부는 날마다 거의 같은 일을 한다. 그래서 아주 정서적으로 진이 빠지며, 남편과 자녀를 중심으로 자신의 일정을 조절해야 한다. 그 결과 자기 자신에게 쓸 시간은 별로 없다.
가정주부는 세상이라는 무대의 뒤에 남겨져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특히 아이들이 조금 커서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 그렇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아내로서의 구실이 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정주부는 가정의 빛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내 딸이 학교에 가면서였다.
35년 전에, 내 딸은 뼈에 큰 문제가 있어서 입원했는데, 그때 나는 집안일을 하느라 병원에 가서 아이를 돌봐주지 못했다. 아들은 아직 어린 아기였다. 그래서 나는 아들도 돌봐야했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뭘 먹고 싶어요?”하고 물으면 남편은 “아무 거나 좋아”라고 대답하곤 했다.
나는 점점 식사 준비가 싫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여러 가지 부엌공포증을 만들어냈다.
딸은 가슴부터 발끝까지 깁스를 하고 있어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따뜻한 봄날, 딸아이가 내게 지붕에 올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나를 지붕 끝에서 밀어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완전 충격 받았다.
딸은 엄마의 얼굴에서 본 것은 오직 괴로움뿐이었고, 그것은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부모가 슬프면 아이도 슬퍼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는 가정주부로서 내 직업에서 기쁨을 느끼는 방법들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예를 들자면, 지금 당신이 쿠키를 만들고 있다고 해 보자. 쿠키를 만들 때 가장 까다로운 것은 필요한 모든 재료의 양을 아주 계산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좀 여가가 있을 때 설탕과 다른 재료들을 먼저 계량해서 작은 그릇들에 미리 담아 놓았다가 나중에 썼다.
그러자 갑자기 쿠키 만들기나 빵 만들기가 훨씬 쉽고 아주 재미있어졌다.
또 나는 가정주부로서의 내 역할을 직업개발로 바꾸는 방법들도 찾아냈다. 제철 재료를 이용하면서 간단하고 맛있으며 식품첨가물이 없는 요리법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또 나는 후쿠시마 시에 있는 사쿠라노 세이보전문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남성들에게 요리강좌를 하는 일도 10년이나 했다.
예를 들어, 이 강좌에서는 홍당무가 나오는 철에는 큰 홍당무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남은 음식은 학생들이 집으로 가져간다.
한 번은 한 남자가 내게 와서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있잖아요, 마누라가 문 앞까지 나와서 나를 마중해주는 날은 내가 이 요리강좌에 오는 날들 뿐이에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화를 내는 사람은 절대 없다. 그래서 요리를 하면 오래 살 수 있다. 내가 평생교육원에서 했던 또 한 가지는 “500엔 무한 뷔페”였다. 성경공부반 사람들에게 내가 대접할 기회였으며, 또한 공부 중에 잠시 쉬는 때이기도 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가족은 한 교환학생을 집에 받아들였다. 주일 미사 뒤에 본당신자들을 위한 커피숍도 차렸다. 집에서 만든 케이크를 공짜로 나눠줬다. 이 모든 것이 “가정주부의 성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는? 내 꿈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우리 집에 받아들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고민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언젠가 꼭 이뤄지기를 진실로 바라고 있다.
이나바 치에는 가정주부이며, 일본 후쿠시마 시에 있는 노다마치 성당 신자다.
By 가톨릭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