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토퍼 조셉)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퇴를 발표한 뒤로 언론들은 그가 교회사상 5번째로 사퇴한 교황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들 언론이 빠트리고 있는 것은 과거에 어떠한 교황이 추기경단 앞에서 자신의 사퇴의향서를 읽으면서 사퇴 이유를 자세히 밝히며 공개적으로 사퇴한 적이 있는지 여부다.
실은 그러한 교황은 이전에는 전혀 없었기에 그런 사례를 찾아보는 것은 쓸모없을 것이다.
2000년의 가톨릭 교회 역사 속에서 여러 교황이 자의로 또는 타의로 사퇴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육체적으로 직무를 감당하기 어려워 교황직을 떠난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많은 교황이 과거에 어떠한 조건 속에서 자세히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시기에는 동시에 하나 이상의 교황이 있기도 했고 때로는 교황이 하나도 없었던 때도 있었다. 교황들이 서로를 향해 파문장을 내곤 했다.
교황 폰티아누스(230-236)은 사퇴한 첫 교황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화 시기에 교황이 됐으나 235년에 당시 로마의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로마를 점령하고 그리스도인을 억압하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폰티아누스 교황은 체포되어 사르디니아 섬으로 추방됐다. 그는 한 번 추방되면 살아서 돌아간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권력 투쟁을 피하고 교회의 선익을 위해, 로마에서 떠나기 전에 사퇴했다. 이번에 사퇴한 베네딕토 교황은 교황직에 필요한 책임을 자신이 다할 수 없기 때문에 사퇴했으므로, 폰티아누스 교황의 사퇴 이유와 비슷한 점이 있을 것이다.
요한 18세(1003-1009)는 전혀 다른 이유로 사퇴했다. 그는 크레센티우스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는데, 이러한 외부의 간섭에 지쳐 마침내 사퇴하고 한 수도원으로 달아나 거기에서 죽었다.
옛날에는 교황청 안에서의 정치 조작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여러 교황이 이러한 정치적 조작에 저항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첼레스티노 5세(1294)는 즉위한 지 5달 만에 사퇴했다.
추기경들과 충돌했고 이에 따라 시칠리아의 샤를르 2세와 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에 은수자였던 이 교황이 사퇴했다는 평가가 있다. 그가 당시 교황직이 너무 세속화되어 있어서 환멸을 느꼈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의 사퇴는 교회법에 선례로 남았다. 교황은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사퇴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교회법을 잘 아는 꼼꼼한 신학자인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사퇴를 발표하면서 이 전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유 의지라는 것은 해석하기가 까다로운 것이다.
그레고리오 12세(1406-15)가 좋은 사례다. 이번의 베네딕토 16세 전에는 마지막으로 사퇴한 교황인 그레고리오 12세는 추기경단의 주장에 자극을 받아 서방 이교을 해소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퇴를 감행했다.
그는 1406년에 교황선거(콘클라베)에서 교회법에 맞게 선출됐으나 프랑스의 아비뇽에서는 반교황 베네딕토 12세가 있어서 자신이 합법 교황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무리의 추기경들이 따로 모여 알렉산드로 5세 교황을 뽑았다.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두 사람 다 사퇴하고 교황직을 넘기라는 것이었다. 이에 1415년에 그레고리오 12세는 사퇴했으나 그가 1417년에 죽은 뒤에야 새 교황이 선출됐다. 2년간 교황직이 공석이었다.
또한 또 다른 모습의 교황직 사퇴들도 있다.
실베리오 교황(536-537)은 테오도라 황후와 사이가 안 좋아서 반역죄로 기소됐다. 그는 사퇴를 강요받았고 비질리오 교황이 승계했다.
마르첼리노 교황(296-304)은 303년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에 이교의 신들에게 향불을 바쳤다는 혐의를 받았고 강제로 퇴위 당했다.
그리고 베네딕토 9세(1012-1056)는 세 번 교황직을 맡았는데, 교황직을 돈을 받고 팔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추문은 너무 요란해서 신실한 사제였던 그의 대부가 마침내 그에게 뇌물을 줘서 사퇴시켰다.
이처럼 과거에 있었던 여러 사례를 보아도 이번의 베네딕토 16세의 사퇴 결정과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것은 없다. 그의 퇴위는 전례가 없다. 육체적 쇠약을 이유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직분을 포기한 교황은 없었다.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변화하는 교회론 개념 속에 살고 있다. 오래 전의 전통들이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회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지 않으면 외톨이가 될 위험을 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보자면 베네딕토 16세는 전통적 모습의 교황이다. 그러나 그가 이번에 교황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한 방식을 보자면 그는 다르다.
이번의 그의 결정을 살펴보면 그가 교황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아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곧 죽기에 이르기까지 이어가야 할 하느님으로부터의 소명이라기보다는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자리로 보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현대적 접근법이며, 앞으로의 후임 교황들에게도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조셉은 <가톨릭뉴스> 인도 지국장을 맡고 있다.)
By 가톨릭뉴스